『제발 종정(宗正) 안 한다는 말씀만 하지 말아주십시오』승단의 이런 간청으로 종정이 된 뒤에도 선가의 본분사에만 몰두함으로써 한국정신사의 우뚝한 거봉으로 존재한 성철(性徹) 스님. 종정은 우리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이다. 이런 종정 스님들의 전기를 한자리에 정리한 「종정열전」이 출간됐다. 경기 이천시 지족암에서 수행하고 있는 임혜봉(林慧峰·사진) 스님이 펴낸 「그 누가 큰 꿈을 깨었나」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처럼」(가람기획 발행)은 구한말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정 스님들의 생애와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한 전기(傳記)이다.
첫 권 「그 누가 …」는 해방 직후 한영(漢永) 스님으로부터 만암(曼庵) 석우(石友) 동산(東山) 효봉(曉峰) 청담(靑潭) 고암(古庵) 서옹(西翁) 성철 서암(西庵) 월하(月下) 스님을 거쳐 지금의 혜암(慧菴) 스님에 이르기까지 종정 12명의 행장을 담고 있다. 둘째 권 「천고에 자취를…」 은 불교역사상 처음으로 종정이란 명칭을 사용한 회광(晦光) 원종(圓宗) 초대 종정을 비롯해 경운(擎雲) 환응(幻應) 동선(東宣) 해담(海曇) 용허(龍虛) 혜월(慧月) 만공(滿空) 한암(寒巖) 등 9명의 일제시대 고승의 전기를 실었다.
지금까지 불교계에는 「해동고승전 연구」등 일부 승전 연구를 제외하고는 본격적인 불교전기학의 성과가 사실 드물었다. 약전(略傳)이나 소설 등의 형태로 몇몇 종정 스님의 행장이 소개된 적도 있지만 정확한 자료조사보다는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존해 답습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5년간 「종정열전」을 집필한 지은이는 『또 교계에서는 큰스님들을 무조건 「받들어 총」하는 식으로 장점과 좋은 면모만 부각시키려는 경향도 농후했다』며 『공간된 불교계의 정기간행물, 문집, 어록, 법어집, 기타 자료들을 철저히 조사해 객관성 있는 전기를 구성하고자 노력했다』 고 밝혔다. 실증작업이 돋보이는 면이다.
지은이는 동산 스님 이후 비구·대처승 간의 불교정화운동과 불교계 내부 분규에 대해서도 비판적 필치를 가해 눈길을 끈다. 『조계종단이 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종정의 대수(代數)만 기록해 예우하는 것은 45년 8월부터 62년 3월까지의 한국불교사와 그 종정을 부정하는 셈』이라며 효봉 스님 이전의 한영, 한암, 만암, 동산, 석우 스님도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특히 자료조사를 통해 「엿장수 중」「판사 중」「절구통 수좌」로도 알려진 효봉 스님이 일제시대 평양복심법원 판사였다는 「전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은다. 효봉 스님의 속명인 「이찬형」이란 이름이 일본 와세다대학 졸업생 명단에 없고, 1911년부터 발행된 「조선총독부 직원록」 및 「한국법관사」에 대한 실증적 조사에서도 효봉 스님이 법관으로 근무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
또 한암 스님이 27년간 오대산에서 은거하며 한 발자국도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는 「불출동구(不出洞口)」의 전설에 대해, 두 번 하산한 기록을 추적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오대산 전설이 없어져서는 안된다』고 밝히는 등 불교사상의 여러 전설과 비문(碑文)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외 저자는 지금까지 전혀 전기가 없던 경운 스님과 환응, 동선, 해담, 용허, 혜월 스님 전기도 사실상 처음 집필했다. 혜봉 스님은 『앞으로 보다 건실하고 제대로 된 불교전기학이 교계에 자리잡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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