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엔드 오브 데이즈」주연 제리코로 스크린 돌아온 아놀드 슈워제네거심장 수술로 한동안 스크린을 떠났던 액션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52)가 2년 만에 새 영화를 선보인다. 97년 배트맨 시리즈 4탄 「배트맨과 로빈」 촬영을 끝내고 심장판막을 이식했던 그는 저돌적이면서 강인한 근육질 스타의 이미지가 실추되었을 것을 꽤나 염려했을 법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서 12월 4일, 미국선 이보다 앞서 이달 24일 개봉하는 영화 「엔드 오브 데이즈」(End of Days·최후의 날)는 팬들의 기우(杞憂)를 단박에 날려버리고 있다.
영화에는 그의 특장인 호쾌한 액션과 무뚝뚝한 표정 연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아놀드는 역시 아놀드다. 미국 뉴욕서 14일 전세계 영화기자들을 상대로 연 간담회에서 그는 『이 영화는 천년이 바뀌는 시점에서 선과 악의 문제,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화는 액션이 넘치지만 초자연적인 현상을 화면으로 끌어들인 스릴러로 볼 수도 있다. 아놀드는 『스릴러의 틀에 액션 영화의 공식을 적용한 새로운 영화』라고 설명했다.
1999년 12월 31일 밤 12시 전까지 악마가 선택된 여자를 겁탈해 그의 씨앗을 잉태시키면 지옥문이 열리고 인류는 종말을 맞는다. 뉴욕 한 은행장의 몸에 들어간 악마(가브리엘 번)는 크리스틴(로빈 튜니)이라는 여자에게 접근하고 아놀드는 여기서 사설 경호원 제리코(아놀드)로 출연해 악마로부터 여자를 지키는 역할이다. 싸워야 할 세력은 또 있다. 종말의 음모를 알고 있던 가톨릭 내부에서 악마의 씨앗을 잉태할 여자를 제거해야 인류의 최후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극단론자들이다.
『제리코는 자살할 위기에 있는 사람이다. 형사였던 그는 범죄자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었다. 그리고 직장을 잃었고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었다. 그런 사람의 황폐한 내면의 모습과 고통을 표현하느라 고심했다』
영화 마지막에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놀드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도 그의 연기 경력에서는 새로운 장면이지만, 그의 말처럼 이번 영화 자체가 「터미네이터」 「코난」 「코만도」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힘이 살아있고 화면 가득 피만 튀어서는 크게 부족할 수 있기 때문. 차고도 넘치는 종말과 구원이라는 종교의 이야기를 얼마나 창의로운 시나리오로 끌고 가느냐, 또 감독과 연기자는 그것을 얼마나 현실감있게 화면에 옮기느냐가 중요한 문제. 하지만 감독과 촬영을 맡은 피터 하이암스, 그리고 주연 아놀드는 그런 신선함을 안겨주지 못해 아쉽다. 「창의력」이 부족한 각본 탓도 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정치로만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정치판에 뛰어드는 문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뉴욕 주지사 진출 소문을 두고 아놀드가 에둘러 한 말이다. 『배우로 좀더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둘다 그렇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의 약간 허풍스런 스타일과 이번 영화를 볼 때는. /뉴욕=
인생에 낙오해 자살을 꿈꾸다가 결국 인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설 경호원 제리코 역할의 아놀드 슈워제네거.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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