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가 울려 퍼진다/ 골짜기에서 저 산 아래까지/ 여름은 가고 꽃들이 진다…/ 초원에 여름이 들면 돌아오리/ 계곡에 고요히 눈이 쌓이면/ 해가 뜨나 비가 오나 거기 있으리/ 오, 대니 보이, 너를 사랑해.노래처럼 그는 돌아왔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 신념, 이데올로기가 증오의 총구로 변해 가을 낙엽처럼 생명이 우수수 떨어지는 곳이지만 떠날 수 없다. 그곳은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인 메기(에밀리 왓슨)가 있는 곳이다. 14년의 감옥생활을 마친 권투선수 대니 플린(대니얼 데이 루이스)은, 그래서 낡은 가방 하나 걸쳐메고 아일랜드 벨페스트로 돌아왔다.
사각의 링에 다시 오르는 그를 반기며 고향사람들은 「대니 보이」를 부른다. 체육관을 울리는, 아득한 그 먼날 누가 먼저 불렀는지 모를 민요는 현실에 대한 원망이자, 총 대신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노래가 끝나고 거리를 나서면 아일랜드 겨울의 혹독한 바람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그들의 웃음을 앗아간다.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짐 세리던 감독과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세번째 만난 「더 복서」는 아슬아슬하다. 적 아니면 아군이란 이분법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첫 사랑을 되찾으려 한다. 그 첫사랑 메기는 대니가 감옥에 있는 동안 절친한 친구와 결혼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어 그녀의 남편은 감옥에 있고, 대니가 메기 곁으로 돌아왔다.
대니에게 권투는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메기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가 강경파 상대선수를 링에서 쓰러뜨리는 것은 착한 「대니 보이」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이념과 종교에 대한 저주이다. 자신을 감옥으로 가게 했던 IRA조직의 행동대장인 강경파 해리와 메기의 아들에게까지 「적」이 된 대니 . 그러나 감옥에서 그를 지켜준 것이 분노가 아니듯, 지금 그가 적들 앞에서 용기를 갖는 것은 그 보다 훨씬 강한 메기에 대한 사랑이다.
영화는 해리를 죽이면서까지 대니와 메기의 사랑을 맺어준다. 그렇다고 대니보이들이 평화를 찾은 것은 아니다. 둘의 사랑은 그곳을 떠나야 했고, 고향은 여전히 피가 흐른 채 남아있다. 아일랜드 복싱영웅 배리 맥기건이 모델이지만 감독은 영웅얘기가 아닌 처절한 조국의 현실 위에 그를 올려 놓았다.
배리 멕기건의 지도 아래 매일 6시간의 훈련과 250번의 실전으로 다듬어진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80년 「분노의 주먹」의 로버트 데니로 이후 최고 복서연기를 보였고, 그것을 팽팽하게 연출한 감독의 솜씨 또한 놀랍다. 27일 개봉. 오락성 ★★★☆ 예술성★★★☆
대니와 메기의 위험한 사랑. 미움과 증오로 갈라진 아일랜드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애니얼 데이 루이스
지난해 4월 「더 복서」를 마지막으로 그는 배우생활을 접었다. 아내 레베카 밀러와 한 살 난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로 숨어들었다. 구두 수선공을 직업으로 택했다. 놀라움과 찬사와 아쉬움. 그러나 이 영국 배우는 1년반 동안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700만 달러짜리 영화 「Gone To Earth」(내년 4월 촬영 시작) 제작을 시작했다. 아내가 각본과 감독을 맡는다. 유명한 아서 밀러의 딸이다. 두 남자 주연도 결정됐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사진)와 제레미 아이언스. 팬들을 설레게 하는 최고 영국 출신 배우의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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