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옷로비 사건의 축소은폐 의혹 등 잇따라 터지는 사건들을 신속히 매듭짓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악재가 터져도 제대로 해명도 못하고 있다. 수석비서관에서 비서관, 행정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감을 잃고 어쩔줄 몰라 허둥댄다.청와대의 속수무책은 여권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진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국면 전체를 놓고 총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지휘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청와대 안에서 조차 『악몽이면 좋겠다』는 탄식과 자조가 나오는 형편이다.
이런 공동화(空洞化)는 근본적으로 진실이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면, 그 진상이 속도감있게 규명되기 보다는 오히려 의혹이 증폭되는 형국이다. 옷사건만해도 발생한 지 몇달이 지났는데도 「로비가 있었느냐」는 본질은 제쳐놓고 조작·은폐의혹, 위증의혹 등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언론문건 파문, 정형근(鄭亨根)의원 문제, 서경원(徐敬元)전의원 밀입북 재수사, 이근안(李根安)전경감 도피의혹도 계속 가지를 치며 확대되고 있다.
여러 사건들이 얽히면서 국민의 염증이 심해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정치불신이 여야 모두에 쏟아지고 있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 당 내각 등 여권의 주요 축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김대통령이 집권초 공작정치의 의혹을 살 것을 우려해 『무슨 무슨 대책회의를 하지 말라』고 한 탓인지 정치적 사건이 터져도 여권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이지 않는다. 언론문건만해도 이종찬(李鍾贊)부총재에게만 대응을 맡겼을 뿐 청와대나 당은 가급적 한발짝 거리를 유지하려고 만 했다. 특히 정보가 교류되지 않아 청와대와 당의 얘기가 다른 경우가 적지않아 의혹을 증폭시키는 측면도 있다.
비서실의 여론전달, 대책마련 등 보좌기능도 낙제점이다. 옷사건에 대한 사직동팀의 내사도 칼날같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정국대립이 장기화할 때도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한다든지, 아니면 명분을 선점하는 공격성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야당의 무조건적인 저항, 소수정권의 한계, 지역대립 구도의 지속 등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어쨌든 청와대가 총체적인 혼돈에 빠져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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