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라를 새로 세우려면 새로운 천년맞이를 천년만의 새 기운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지 않고는 이 나라의 대청소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은 커녕 천년하청이다. 2000년도 앞으로 4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아까운 기회를 허송해버리기 쉽다. 기회는 그것이 기회인줄 아는 자의 것이다.우리나라의 각종 비리와 부정은 사정만으로 근절되리라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드러나지 않은 죄악은 더 무진장이다. 묵은 구악(舊惡)에 신비(新非)까지 겹쳐 자꾸만 쌓인다. 신비만 놓고 보더라도 사정이 들추어내는 것보다 몰래 새로 생기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니 사정은 부정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 들키는 것은 교통사고일 뿐이다. 교통사고가 무서워서 차를 안모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또 새로운 비리는 자꾸 생기게 마련이다.
부정부패의 일소에 관한 한 이제 어느 정권도 불신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불신이 부정부패로 하여금 더욱 자신을 갖게 한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새로운 차원의 단안이 필요하다.
여기에 마침 새 천년의 문이 열린다. 정권이 바뀌어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천년이 바뀌면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는지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다.
여권에서는 새 천년을 맞아 연말에 밀레니엄 대사면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경제사범과 행정사범 등 500만명이 고려 대상이다. 수적으로 대규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세기의 국가재건은 이 생활사범의 대사면만으로 족할 것인가.
나는 올해초 첫 밀레니엄의 종년(終年)에 접어들면서 본란을 통해 「2000년선언」을 제창한 바 있다. 로마교황청이 2000년을 대희년(大禧年)으로 정하고 대사면의 해로 선포했듯이, 옛날 대희년에는 노예를 해방하고 빚문서를 찢어버렸듯이, 우리도 커다란 용서와 커다란 화해로 그 과오가 과거의 시대상황이 낳은 것일 때는 일제히 불문에 부치는 선언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땅에서 부정부패를 추방하자면 사이렌을 불어야 한다는 것이 문민정부 때부터의 내 생각이다. 어차피 사정으로 그 암괴같은 악의 덩치를 발본하지 못할 일이라면 과거의 죄는 일체 눈감아버리고 통행금지 사이렌을 불듯이 대선언을 하여 이날부터 생기는 새로운 비리는 철저히 단죄하자는 것이다. 묵은 죄의 뿌리는 캐내기 어려워도 새로운 죄의 싹은 잘라내기 쉽다. 또 목욕을 하고난 깨끗한 몸은 새 때를 묻히고 싶지 않아진다.
이 선언으로 부정부패 사범에 대해 드러난 죄만 용서할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죄도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구죄(舊罪)는 드러난 것이든 드러나지 않은 것이든 일정한 범위내와 한도이하의 것은 사면하되 신죄(新罪)가 발생하면 그 사람의 구죄까지 모조리 들추어 가중처벌해야 할 것이다.
이런 선언은 법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지(旣知)의 죄도 사면하는데 미지(未知)의 죄를 사면 못할 것 없다. 그리고 법보다 앞서는 것이 용서와 화해다. 새 천년은 왜 다가오는가. 원칙을 뛰어넘을 특권이 용인되기 위해 다가온다. 새 천년이 이 선언의 호기인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부정부패에 대한 과거불문의 대선언은 다른 범죄와의 형평에 어긋난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범죄다. 이만큼 우리 사회의 진운(進運)을 가로막는 범죄가 없다.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것이 이만큼 더 많은 범죄도 없다. 부정부패의 청산 없이는 어느 분야의 개혁도 무의미하다. 특히 모든 정치권 인사들이 다 연관된 것이나 다름없는 정치자금관계의 과거 비리들이 어떻게든 말소되지 않고는 절대로 정치개혁이 되지 않는다. 또 지난 시대에는 당연시 되어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크든 작든 면책될 수 없는 비리들이 어떻게든 지워지지 않고는 사회개혁은 되지 않는다.
누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지만, 과거만 뒤돌아보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로부터 어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 해방 없이 제2의 건국은 멀다. 지난 세기에 발목 잡히는 새 세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새 천년의 선언으로 천년 묵은 때를 벗기자.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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