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립국어연구원이 발표한 한글 로마자표기 개정안은 발음 따라 적는 현재 표기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쓰자고 해도 거의 활용하지 않았거나, 우리 말소리와 너무 동떨어져 지적이 끊이지 않던 부분은 일부 고쳤다.가장 큰 변화는 「ㅓ」와 「ㅡ」를 표기하기 위해 「o」 「u」 위에 찍던 반달표(˘)와 자음의 거센 소리 「ㅋ, ㅌ, ㅍ, ㅊ」를 위해 「k, t, p, ch」 오른쪽 위에 찍던 어깻점(')을 없앤 점. 이런 표기법을 정하고 10년이 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특수부호를 생략하거나 무시했다. 특히 컴퓨터 자판이 이 부호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개정의 필요성에 크게 작용했다. 「ㅓ」는 「o」로 적다가 「eo」로, 「여」는 「yo」에서 「yeo」로 바꿔 적는다. 「ㅡ」는 「eu」로 표기하고, 「ㅢ」는 「ui」에서 「ui」로 고쳐서 적어야 한다. 「ㅋ, ㅌ, ㅍ, ㅊ」은 어깻점 없앤 「k, t, p, ch」로 적기로 했다.
유성과 무성을 구별해 적던 자음 표기를 한 가지로 통일한 점도 눈에 띈다. 「ㄱ, ㄷ, ㅂ, ㅈ」은 기존에는 글머리에 올 때 「k, t, p, ch」로 적고, 유성음일 때만 「g, d, b, j」로 적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모음 앞에서는 언제나 「g, d, b, j」로 적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Cheju」로 적어 같은 「ㅈ」을 「ch」와 「j」로 달리 표기했던 제주는 개정안에 따르면 「Jeju」로 바뀌어야 한다. 광주, 독도, 부산도 마찬가지로 Kwangju→Gwangju, Tokto→Dokto, Pusan→Busan으로 바뀐다. 외국인은 유성과 무성의 발음 습관이 자연스럽지만 한국인은 이런 구별을 거의 하지 않는데다 외국인들이 더 정확한 발음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뜻도 깔려 있다. 자음 앞에 오거나 받침으로 쓸 때는 지금처럼 「k, t, p」로 적는다.
된소리인 「ㄲ, ㄸ, ㅃ, ㅉ」은 지금처럼 「kk, tt, pp, jj」로 표시한다. 다만 「ㅉ」은 「ch」를 겹쳐 쓸 수 없기 때문에 「jj」로 적는다. 지금 표기로는 「ㅅ」을 「ㅣ」 모음 앞에서는 「sh」, 나머지는 「s」로 적지만 개정안에서는 모두 「s」로 적기로 했다. 따라서 신촌은 Shinch'on으로 적던 것을 Sinchon으로 바꾼다. 「ㄹ」은 모음 앞에서는 「r」로, 자음 앞이나 말끝에서는 「l」로, 「ㄹㄹ」은 「ll」로 표기한다.
말은 읽을 때 원래와는 다른 소리가 난다. 개정안은 맞춤법에 따르지 않고 발음대로 적는다. 84년 표기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 사용해오는 방식대로다. 그래서 종로는 Jongno, 신문로는 Sinmunno, 신라는 Silla로 적는다. 「ㄴ, ㄹ」이 덧나거나 구개음화도 마찬가지. 꽃잎은 kkonnip, 해돋이는 haedoji로 표기한다. 하지만 사람 이름을 쓸 때 한자어 이름의 사이, 행정구역 표기에서 앞말과 단위 이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운변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표기법과 다르지 않다.
심재기(沈在箕) 국립국어연구원장은 『개정안은 그동안 써왔던 발음을 중심으로 한 표기법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실상 쓰이지 않았던 특수부호를 없애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의 걸림돌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국어연구원은 97년 한글 맞춤법에 따라 로마자를 적자는 개정안을 마련한 적이 있었지만, 84년 지금의 표기법으로 바뀌기 전까지 사용한 이 방식은 공청회 등에서 외국인을 위한다는 로마자 표기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개정시안 일문일답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시안 발표에 따라 실제로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국민생활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 혼란스럽고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 문답식으로 정리해본다.
-김포도 Gimpo로 바꿔야 하나? 외국인은 「짐포」로 발음하지 않을까?
『Kimpo로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Gimpo로 바꾸어야 한다.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김해, 제주, 청주 등 다른 지명도 예외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새 표기법의 의의가 없어진다. 영어에서 gi가 give, gift 등 「기」 발음이 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이 「짐포」라 발음하면 「김포」로 고쳐줘야 한다』
-왜 경음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가?
『발음에 따라 로마자로 적는 이상 경음화된 발음도 표기에 반영하는 것이 체계적이나, 국어의 경음화 현상이 매우 불규칙하여 표기가 혼란스러워질 우려가 있다』
-「어」를 「eo」로 적으면 외국인이 「에오」로 읽지 않을까? 인명·회사명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대로 u로 하면 되지 않을까?
『eo로 하는 것이 만족스런 방법은 아니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다. cut, sun 등 u를 「어」로 발음하기도 하지만, 외국의 고유명사는 Peru 처럼 모두 「우」로 발음한다. 흔히 Samsung이 「쌈쑹」으로 불린다. 결정적으로, 「어」를 u로 적으면「우」를 적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동안 Kim으로 써온 김씨는 Gim으로 바꾸어야 하나?
『이미 사용하고 있는 개인의 인명표기나 회사의 상호명·단체명 등에 대해서는 현재의 표기를 허용한다. 다만 앞으로 새로 만들어질 인명, 회사명 등은 새 표기법을 권장할 계획이다』
-실생활에서는 무엇이 바뀌게 되며 새 표기법 보급을 위한 계획은?
『건설교통부와 협의해서 우선 내년 상반기 중으로 도로·철도·관광지 표지판의 영문표기를 바꾸겠다. 덧칠해 수정을 하면 되므로 예산은 70억-8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재고로 쌓인 지도는 폐기하고 새 표기법이 적용된 지도로 대체할 계획이다. 교육부와 협의해서 학교 교육에도 반영하도록 하겠다. 일반인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기 용례사전을 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