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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현기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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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현기영씨

입력
1999.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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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再生)이란 것을 실감합니다』제32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을 현기영(玄基榮·58)씨는 자신의 문학적 재생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상이란 것은 젊은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데…』라며 겸양한 그는 수상작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바로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현씨의 말처럼 생명과 젊음의 소설이다. 장편소설의 에피소드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가 이 소설처럼 일관되게 생생하고 감동적인 경우도 드물지만 현씨가 자신의 출생을 회상하며 쓴 이야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어미 몸에서 갓 나온 송아지가 땅에 닿자마자 곧 와들랑 몸을 일으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마치 대지의 분출로 송아지가 탄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지의 분출로 태어나 자연에 젖줄 대고 자란 한 생명, 그 생명이 세속에 물들기 전까지 성장하는 십사오년 간의 과정을 현씨는 이 작품에서 그렸다. 일제의 억압, 마을을 통째로 태워버렸던 4·3의 불길, 이후 전쟁의 상흔들이 제주도 사람들의 삶에는 언제나 각인처럼 찍혀있지만 현씨는 이번 작품에서는 그 역사는 다만 배경으로만 묻어놓고 있다.

오직 순수기억에 의지해, 곡괭이질하듯 무의식의 지층을 파고 드는 집요한 과거의 복원작업으로, 자신을 비롯한 동세대의 유소년시절을 재생시킨 것이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참혹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그것과 하나됐던 시절이 현재의 슬픔까지도 어루만져 줍니다』

현씨는 4·3 문제를 우리 문학사상 처음으로 다루어 충격을 던졌던 「順伊(순이) 삼촌」(76년) 이후 최근 「이재수의 난」으로 영화화한 「변방에 우짖는 새」 등 주로 제주도의 역사적 고난을 작품화해 온 작가다. 그의 이 추구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이제 역사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 본연의 문제로 회귀한 셈이다.

『5년 전 「마지막 테우리」를 쓰면서 제주도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나를 키워준 자연, 인공에 의해서 왜곡되어지지 않은 그 원초적 풍광이 이렇게 아름다운가… 지금의 유(類)를 달리 한다는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삶과 자연의 본연이 무언가 하는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지요』

그래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그는 해마다 10여차례 정도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 가서 자신이 뛰놀던 「발가락들이 저마다 꼬물거리면서 낙지발처럼 척척 달라붙던」 용두암에 다시 서보고, 「몸에는 지느러미 돋고 입에는 아가미가 난듯」 헤엄치며 놀던 용연에도 가보고, 동네 어귀에 서있던 먹구슬나무를 회상하며 나무둥치에도 기어올라 보고.

옛 친구들을 만나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나이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졸라 옛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하면서, 그는 이 작품에 매달렸다. 영롱한 기억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함께 갈무리해 자전(自傳)의 한계를 뛰어넘는 근래 드문 문학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것이다.

현씨는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부끄럼없고 무구했던 시절, 나에게는 그 시절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세월은 모두 거짓으로 느껴집니다』라고 말했다. 『늦가을 햇빛이 서울 집에 비칠 때면 으레 고향집 마당에 멍석깔고 햇좁쌀 널어 말리던 일이 생각나고, 그때마다 그 햇볕을 허비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시장에서 표고버섯이나 가지나물이라도 사다 말려야 겨우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하지만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그는 『이제 제주도 이야기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간 이룩한 문학적 성취에 비해 현씨는 참 상복도 없었던 작가다. 그런 현씨여서 이번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은 더 뜻깊어 보인다. 최근 젊은 작가들에게 집중돼온 문학상들의 풍토에서 현씨의 수상 소식은 문단의 경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서 문학이 패퇴(敗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자신의 탯줄을 묻은 고향 땅을 다시 그리워하는 나이가 되니 『구매중독, 컴퓨터중독, 섹스중독, 영상물의 홍수에 공격받는 요즘의 세태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근대적 인간은 바로 주체적 인간이고,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야말로 주체적 활동이자 저항할 수 있는 인격의 원천이기에 문학은 영원히 소중하고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41년 제주 출생

△67년 서울대사대 영어교육과 졸업·이후 88년까지 서울사대부중·부고, 고척고 교사

△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아버지」당선

△89년 초대 4·3연구소장

△소설집 「순이 삼촌」(79) 「아스팔트」(86) 「마지막 테우리」(94),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83) 「바람 타는 섬」(89)

하종오기자

joha@hk.co.kr

■심사평

예심위원의 고선(考選)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장편 하나와 중단편 아홉, 총 열 편이다. 11월 3일 한국일보사에서 회동한 본심위원들은 대상 작품들에 대한 자유토론을 통해 세 편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도시의 익명성 속에 단자화한 개인들 사이의 소통불가능성을 정확한 문체로 그려낸 배수아의 「200호실 국장」은 최근 세태의 한 국면을 예각적으로 포착하고 있지만, 어딘지 서양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소설에 보이는 어떤 의미있는 변화의 맹아가 앞으로 배수아 소설 특유의 낯선 리얼리티마저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공지영의 「고독」은 바람난 남편을 둔, 아버지가 다른 여자동생의 삽화를 곁줄거리로 오늘날 한국의 평균적 주부의 초상을 여성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섬세하게 묘파함으로써 결혼의 위기를 실감나게 형상화한 수작이다. 자기연민을 넘어 더욱 탄탄한 리얼리티를 획득해가고 있는 공지영의 최근 작업에 유의할 때, 이후 작업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싶다.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일종의 귀향연습이다. 그의 문학적 고향 제주도의 간난한 현대사를 배면으로 주인공 「나」의 성장사를 진진하고도 끈질기게 복원하고 있는 이 장편은 망각에 대한 치열한 저항이기도 하다.

다만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향연습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 동안의 서울생활이란 부질없이 허비해버린 세월』로 전면부정하는 결말의 단상(斷想)은 낭만적 사족(蛇足)이다. 고향의 삶과 도시의 생활을 이처럼 극적으로 대비하는 작가의 발언은 오늘날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도시화」의 황폐한 격랑에 대한 문명사적 경고를 부각하고자 하는 충정의 표현일 것이다.

이 의도적 구도로 유년의 기억 속으로 육박해간 중견작가의 젊은 문학정신을 통해 우리 소설은 타협으로 귀결되는 서구 교양소설과 구별되는 새로운 모형의 한 훌륭한 전범을 가지게 되었다. 심사위원회는 현기영의 장편을 수상작으로 삼는 데 기쁘게 합의하였다./심사위원 金允植 金周榮 崔元植

■심사경위

제32회 한국일보문학상은 98년 10월부터 99년 9월까지 국내 각 월간·격월간·계간 문예지에 발표된 기성작가들의 단편, 중편 및 장편소설 402편을 심사대상으로 했다. 심사위원들은 단행본 등으로 별도 발표된 작품들도 대상으로 삼았다.

예심위원으로 위촉된 문학평론가 황종연, 방민호, 김미현씨는 10월 21일 모임을 갖고 대상작품 중 각 10편 내외를 추천했다.

예심위원들은 추천작 중 중복추천된 작품들을 우선 통과시키고 나머지 추천작 중 토론을 거쳐 모두 10편의 작품을 본심 대상작품으로 뽑았다.

본심 대상작품은 공지영 「고독」(21세기문학 99년 여름호), 김영하 「사진관 살인사건」(문학동네 99년 봄호), 김채원 「인 마이 메모리」(작가 99년 봄호), 배수아 「200호실 국장」(문예중앙 99년 여름호), 심상대 「할머니께 올리는 감사」(세계의문학 99년 여름호), 오수연 「나는 음식이다-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2」(한국문학 99년 가을호), 윤대녕 「수사슴 기념물과 놀다」(문학과사회 99년 봄호), 최인석 「염소 할매」(문학동네 99년 가을호), 한창훈 「변태」(문학동네 99년 봄호),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이상 가나다순)였다.

본심위원 김윤식, 김주영, 최원식씨는 11월 3일 한국일보사에서 심사위원회를 열고 예심 추천작 중 공지영, 배수아, 현기영씨의 작품을 최종 후보작으로 압축해 토의한 끝에 현기영씨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한국일보문학상에서 장편소설이 수상작이 된 것은 87년 이제하(李祭夏)씨의 「狂畵師(광화사)」 이후 12년 만이며, 역대 장편 수상작은 모두 6편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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