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욕망과 상실심상용 지음현대미학사. 1만 5,000원『예술가의 열린 눈은 그의 내적인 삶의 방향으로 돌려져야 하며, 그의 귀는 내면적 필연성의 언어에 항시 향해져 있어야 한다』
추상회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그의 미학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술에서 이론이 앞서고 실제가 뒤따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유파나 유행, 시대적 교의를 떠나 오직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필연성에 따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미술은 어떤가. 미술사학자 겸 미술평론가 심상용(동덕여대 교수)은 『당신의 내면적 필연성은 무릎을 꿇었다』는 말로 상황 진단을 시작한다. 그가 보기에 칸딘스키의 예언은 뒤집혀 실현됐다. 현대미술은 작품보다 작가, 작가보다 비평가, 예술성 대신 상업주의와 스캔들, 실제보다 이론이 득세하고 있다. 『예술은 잡다한 이론의 수다스러움에 의해서만 겨우 부양되고 있으며 화가는 지식인이 되었고 회화는 담론이 되어버렸다』고 빈정댄다. 비평가의 말 장난과 스스로 담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화가들의 욕망 덕분에 수다스러워진 예술에서 지은이는 현대미술의 빈곤과 파멸의 징후를 본다.
이 책은 현대미술이 처한 우스꽝스럽고 잔인하고 자괴적인 상황을 비판한다.
예술에서 작품성과 대중적 인기에 의문을 던지고, 현대 미술시장의 상업적 원리와 비평가의 횡포를 비판하고, 진정한 관객은 없고 단순한 시장만 있을 뿐이라고 개탄한다. 지은이의 말투는 매우 신랄하고 조롱이 가득하다. 허위의 거품에 빠져 허우적대는(혹은 그것을 즐기는) 작가, 비평가, 관객을 향해 우아하지만 쓰라린 욕설을 던진다. 그의 말솜씨는 어지러울만큼 현란하고 매력적이다. 롤랑 바르트, 가스통 바슐라르, 발터 벤야민, 장 보드리야르 등의 예술이론을 맵시있게 인용하고 문학, 철학, 대중문화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시선으로 종횡무진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제2장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이지 않은 것에 대하여」는 분노로 가득찬 격문 같다. 선정기준이 의심스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가 「알량한」 상을 받았다고 나라의 경사처럼 감격하고, 로댕과 서울은 아무런 교차점이 없는데도 서울 한복판에 로댕갤러리가 등장했다고 문화국가의 자부심에 뿌듯해하며, 신진 작가들이 소품전을 냉소하고 대작 컴플렉스를 공유하는 현상 등이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모든 뼈아픈 비판의 에필로그로 그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드리는 당부」를 싣고 있다. 『담론의 홍수 속에 개인적이어야 할 고백들을 수장시키지 말 것』과 『예술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확하게 자기 분량 만큼의 예술을 소망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다. 『나는 여전히 괜찮은 작가와 그들의 좋은 미술을 믿고 싶다』며. 이 책이 자폐적 진보, 무기력증, 불임의 늪에 빠진 현대미술의 황량한 풍경을 그리면서도 결코 냉소로 그치지 않는 것은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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