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간지의 겨울호에 단편이 나란히 실리면서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등단 연도 순으로 실리는 것이 관행인듯 그의 단편 「내영」(來迎)은 내 글 다음에 있었다. 행자(行者)가 죽을 때 아미타불이 나타나 극락으로 인도하는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몇 줄 읽고서는 『밤도 대낮처럼 밝은 이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싶기도 하고 다른 일이 있어 고만 접어두고 말았다.그 훨씬 전에 영어공용론 찬반론이 신문지상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말 저말로 수시로 자리바꿈을 하던 나는 영어로 소설을 쓴다면 세계 절반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얕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내영」을 읽게 되었는데 거짓 보태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너벳벳」이나 「뜬계집」 정도는 그냥 감으로 잡는다지만 곳곳에는 사전을 뒤적여야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렇게 감칠맛 나는 우리말이 많다는 것과 그 단어들을 동원해 맛깔스러운 문장을 조직해내는 그의 힘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그의 머릿 속에는 국어대사전 상하권이 완벽하게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말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처럼 들리겠지만 요즘에야 가수들도 립싱크를 하는 세상 아닌가.
그의 첫 작품집 「청동 거울을 보여주마」 에는 표제작과 「내영」 「꽃으로 짓다」 「기청제」 「오버 더 레인보우」 「인멸」 그리고 미발표작 「깊은 하늘」이 실려있다. 한줄 한줄이 그냥 예사로이 넘어가는 것이 없는 것만 봐도 작가가 작품에 쏟는 치열함을 고스란히 알 수 있다. 평론가 임규찬의 말처럼 그의 글들은 「장인(匠人)이 되고자 하는 박수의 춤사위」에 다름 아니다.
대량 생산되는 거울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가진 「청동 거울」이 부러울 따름이다. 청동 거울이라는 것은 자칫 녹이 슬기 쉬우니 그는 부단히 거울을 닦고 손질할 것이다. 모국어를 갈고 닦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는 새삼스런 생각에 뒤가 뜨끔했다. /하성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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