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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원씨] '조직보호' 위해서였나 '의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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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원씨] '조직보호' 위해서였나 '의리'였나

입력
1999.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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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원 전치안감은 왜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경감에게 도피를 지시했고, 그에게 도피자금까지 제공했을까.검찰은 15일 서울 옥수동 박씨의 자택에 수사검사를 보내 이씨에 대한 도피지시 등이 「윗 선」이 개입돼 조직보호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 김근태(金根泰)전민청련의장 고문수사지시 등 자신의 치부를 은폐하려 했는지 아끼는 부하직원에 대한 의리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다각도로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우선 박씨가 경찰수뇌부와 안기부 등 관련기관의 윗 선과 조직적으로 협의, 이씨의 도피를 지시하고 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이 드러난 이후 이씨가 잠적한 88년 12월은 5공비리 척결차원에서 시국사건과 용공조작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따라서 검찰은 위기에 처한 경찰과 안기부 등이 조직보호차원에서 이씨를 도피시키고 향후 지원대책 등을 협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검찰조사에서 『수사상황과 소환자를 매일 안기부와 치안본부 수뇌부에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얼굴없는 사단장」으로 대공수사의 명성을 날리던 박씨가 고문수사 지시 등 자신의 치부가 공개되는 것을 우려, 독자적으로 이씨의 도피를 주도했을 수도 있다. 박씨는 40년간 대공수사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을 처리했고, 83년부터는 시국사건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근태씨 고문사건도 박씨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이씨도 박씨의 지시를 받고 이 수사팀에 합류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축소 은폐로 구속까지 됐던 박씨는 연이어 언론에 김근태씨 고문사건이 보도되자 이를 은폐할 필요성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박씨가 개인의리 차원에서 부하인 이씨의 도피행각을 도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씨가 80년대 후반 소위 「박처원 사단」을 이끌 때 이씨는 핵심요원으로 박씨의 분신으로까지 불렸다. 또 가족끼리도 관계가 돈독했다. 박씨는 부하들의 도움으로 남파간첩의 암살기도를 모면, 부하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그러나 잠적직후부터 이씨가 가족들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박씨가 혼자만의 비밀로 지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소환조사도 하기에 앞서 박씨가 이씨의 부인 신모씨에게 준 1,500만원에 대한 계좌추적을 시작한 것도 배후인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정덕상기자

jfur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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