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전경감이 김근태 전 민청련의장 고문사건 등 시국·공안사건 수사상황을 당시 안기부와 치안본부에 일일이 보고했다고 자백함에 따라 검찰 수사력이 고문수사 방조 및 도피 비호세력을 규명하는데 집중되고 있다.검찰은 이씨를 검거한 뒤 대강의 도피생활이 드러나자 대공분야 업무는 안기부가 총괄 담당한다는 점에 착안, 이씨의 고문수사와 도피과정에 안기부가 깊숙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결국 검찰은 『수사는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며 『당연히 안기부와 치안본부에 어떤 사건에 누구를 데리고 와서 조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이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더 나아가 검찰은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과 안기부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각각 담당관을 파견한 사실을 밝혀내는 한편 이씨가 10년10개월에 걸친 도피행각도중 안기부나 치안본부의 안가에서 은거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특히 박처원전치안감이 이씨에게 도피를 지시한 88년12월 그가 이미 경찰을 떠난 민간인 신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87년1월 치안본부5차장이었던 박씨는 같은해 5월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 축소·은폐사건으로 구속된 뒤 88년7월 정년퇴임했지만 대공업무와 관련해서는 안기부 경찰 등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박씨가 안기부나 치안본부 상층부로부터 모종의 역할을 주문받고 이씨를 도피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시 박씨와 함께 이씨를 만났던 동료 경찰관들은 모두 박씨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고 동행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인이었던 박씨가 옛 부하까지 동원, 이씨의 도피를 지시하고 가족들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은 배후 세력이 없다면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씨의 부인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박씨가 1,500만원이란 거금을 한달만에 마련해 준 점도 이씨의 비호세력이 박씨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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