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제일 시다워지는 순간,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한 순간 나와 비슷한 이미지의 숲에 빠진 당신을 만난다는 것이지요』강은교(54·동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시인이 3년만에 새 시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라도 한다면」이라고 젊은 시절에 노래했던 강시인. 30년 넘게 시를 써온 그는 지금 이 시대 시의 가치를 「같은 이미지의 숲에 빠진 시인과 독자의 정신적 화해」에서 찾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강씨는 그 만남과 화해를 위해 이미지의 숲을 가꿔놓았다. 독자는 거기에서 문득 자신에게 섬광처럼 와닿는 이미지와 단 한 순간이라도 화해할 수 있다면 족할 것이다. 강씨는 『나는 나의 은유를 고집하지 않는다. 당신의 은유를 당신의 거울 조각에 비추어달라』고 독자에게 주문하고 있다. 그만큼 최근 그의 시들은 우리의 친근한 일상을 다루면서도, 상징과 비의(秘意)로 가득 차 있다. 「너무 짧은 사랑 이미지」연작 같은 시들이 그렇다. 「햇빛 한 올을 집어들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거기 네가 있다」(「너」), 「사람들이 엎드려서 무슨 글자인가를 모래 위에 쓰고 있다. ‘점순이-’ 모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점순이」). 신경림 시인은 이같은 강은교 시의 매력을 『이성과 합리만 가지고는 접근할 수 없는, 베일에 가려져있는 신비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 힘들게 독자들이 베일 속을 들여다보려 애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베일 중간중간에는 강시인이 선물처럼 풀어놓은 아름다운 언어들이 곳곳에서 출렁인다.
「새들이 줄을 지어 날고 있었네/황혼이 하늘의 눈시울을 붉게 출렁이고 있을 때/나는 새들의 날개를 따라가고 있었네/그 발톱에 묻은 구름살이 되어 따라가고 있었네/새 한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며 물었네/길이 안 보이니?/그래,/나는 가만히 대답했네」(「새」전문)
안 보이는 길을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 같은 삶, 그 삶의 해답은 어디 숨어있을까. 새를 그린 다른 시에 시인은 답을 숨겨놓았다. 「고개를 드니 새들이 줄을 지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길이 우두커니 그러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구름이 떨어뜨리는, 허공의 눈썹 같은 새들/순간 발꿈치를 들고 서 있던 벽이 잔기침을 하였습니다//모든 벽은 외롭지 않습니다/또 하나의 벽과 만나고 있는 한」(「길이 우두커니」전문). 『여기는 사실 사막』 이지만, 『그 사막 속에 던져져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린 거울조각을 서로 맞춰보는 일』이 「벽」같은 삶이 만나 화해하는 순간이라는 것이 시인의 전언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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