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상술과 타락한 사도(師道)가 재능있는 학생들의 꿈을 꺾고 있다. 중국산 싸구려 바이올린이 라벨만 바뀌어 수천만원대 독일제 유명 바이올린으로 둔갑돼 유통되고, 이러한 악기상과 결탁한 음대 교수 등이 제자에게 가짜 악기를 구입토록 권유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국내 악기시장 가격은 턱없이 높아졌다.서울지검 외사부(박상옥·朴商玉부장검사)는 14일 국내 최대 현악기 수입판매업체 ㈜스트링의 사실상 경영주 박준서(朴峻緖·39)씨 등 악기상 6명을 관세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모여대 음대교수 P(39)씨와 모시립교향악단 연주자 S(36·여)씨 등 6명을 배임수재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달아난 악기상 강모(53)씨 등 2명을 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 등은 96년부터 현악기 75점을 밀수 등의 방법으로 들여온 뒤 가짜 라벨 등을 붙여 고가품으로 위장 판매, 모두 13억여원을 챙긴 혐의다. 음대교수 P씨는 자신이 레슨을 해준 예중·예고 학생들이 이러한 악기를 구입토록 소개하고 박씨로부터 모두 1,700만원을 받았다.
◇수법
이들은 주로 휴대품에 대해서는 검사가 철저하지 않은 허점을 악용, 악기를 밀반입했다. 또 싸구려 악기에 라벨을 붙여 국외 반출한 뒤 외국에서 악기를 구입, 라벨만 붙여 들여오는 수법도 사용했다. 이들은 특히 악기제작자 사전에 수록된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다니니」 등의 유명 라벨을 복사한 뒤 커피물과 물감으로 변색시켜 오래된 라벨로 위조했다. 한국 바이올린제작가협회장 명의의 감정서도 위조했다.
◇문제점 이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현악기가 고가의 명품으로 둔갑, 유통되는 것은 우리나라 악기시장이 외국에 비해 턱없이 높은 가격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유명 고(古)악기가 수백만-2,0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보통 4,000만-5,000만원, 심지어 1억4,000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특히 학부모들 사이의 지나친 경쟁심리와 교수, 레슨강사 등의 부추김에 국내 현악기 가격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 한 전자업체 부장 신모씨는 검찰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딸을 위해 아파트 평수를 줄여가며 4,500만원짜리 바이올린을 구입했다』며 『이 정도는 연습용을 갓 벗어난 수준이고 일부에선 재테크 수단으로 악기를 사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바이올린은 가짜였다.
국내에선 감정이 불가능, 악기상이나 소개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점도 악기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대책 검찰은 악기 밀수를 근절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수사, 엄단하는 한편, 휴대 반출입 요건 강화와 악기전문 세관요원의 양성을 건의할 방침이다. 검찰관계자는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부모의 재력이 없으면 현악을 전공하기 어려운 현실이 바뀌기 위해선 먼저 투명한 유통구조가 정착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라벨」만 중시하는 음악계 전체의 의식전환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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