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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 순간](33) 성석제 '협죽도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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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 순간](33) 성석제 '협죽도 그늘 아래'

입력
1999.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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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해 전인가. 제주도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한라산 허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계속 신문을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길가의 버스정류장에 벤치가 있었는데 그 벤치 위에 머리를 쪽진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오후 서너 시쯤 됐을까. 노인의 머리에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뜨려지고 있었는데 그 나무는 제주도에서 흔한 협죽도였고 그다지 화려하다 할 수 없는 불그죽죽한 꽃이 피어 있었다. 노인은 어디로 가려는지 성장을 하고 화장까지 한듯 싶었다.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한라산 허리를 돌아 북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또 그 노인이 벤치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버스에 가까워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버스가 섰지만 노인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 엷게 화장을 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는데 그 눈길은 아무 것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노인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따라서 그 눈은 밖이 아니라 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왜 노인은 화장을 하고 새 옷을 차려입고 거기 앉아 있을까. 자신이 어디론가 떠나려는게 아니다. 어딘가에서 떠나온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람은 노인이 처녀처럼 화장하고 기다릴만큼 가까운 사람, 어쩌면 처녀시절의 정인(情人)인지도 모른다. 노인은 왜 반복해서 기다리는가. 그 사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왜 오지 않는가. 이 개명세상에 산이 높고 물이 깊어서? 아니다. 오지 못한다. 왜?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다. 버스는 떠났다. 단정하게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협죽도 그늘 아래 그림처럼 앉아있는 노인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막 버스에 오른 사람에게 여기가 어딘가고 물었다. 그는 그곳이 「가시리」라고 했다. 특이한 지명이어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곳은 귀양온 죄인을 위리안치(圍籬安置)한 배소(配所)가 있는 마을이 아니었을까. 가시로 울타리를 쳐서 외부인과 접촉을 하지 못하게 막은? 그 가시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은 아닐까.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몇 년 후 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소설집 「홀림」 중 「협죽도 그늘 아래」)/소설가·소설집 「홀림」「아빠 아빠 즐거운 우리 아빠」등.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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