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을 향해 칼끝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번 만큼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무차별적인 폭로, 구시대적인 색깔논쟁으로 연쇄 파문을 일으킨 정의원 관련 사건을 신속히 수사, 혐의가 밝혀질 경우 정의원이 반드시 법적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의 이같은 강경 기류는 12일 서울지검이 89년 서경원(徐敬元)전의원 밀입북사건과 당시 평민당총재였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불고지(不告知)사건의 재수사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확인되고 있다.
10년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4일 부산집회에서 정의원이 한「빨치산 수법」발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국민회의측이 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은 서전의원이 지난 4월 자신을 간첩으로 규정한 정의원을 명예훼손 및 고문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함께 서울지검 공안1부에 배당, 처리토록 했다. 사건 성격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설명하지만 6개월이나 지난 고소사건을 형사부에서 공안1부로 재배당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앞으로 진행될 수사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검찰은 서전의원 밀입북사건과 김대통령 불고지 사건의 전면 재수사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부산집회에서 정의원이 주장한 「김대통령의 서전의원의 밀입북 불고지 및 공작금 1만달러 수수」발언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사건수사기록을 정밀 검토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지검 임승관(林承寬)1차장검사는 『전면 재수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며 『국민회의와 서전의원이 정의원을 고소·고발한 범위 내에서 수사하고, 공소시효가 지난 고문부분도 명예훼손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서전의원의 고문 주장의 사실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 직원까지 소환키로 해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검찰이 정의원 사법처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의원이 관련된 다른 사건 수사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서울지검 형사3부는 언론대책 문건 관련 고소사건 수사에서 정의원을 제외한 관련자 전원을 조사,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고 사실상 정의원 처리 문제만을 남겨놓은 상태이다. 또 서울지검 강력부는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씨의 비호세력 수사와 관련, 당시 안기부의 관련 여부를 조사 중이다. 여기에다 대검 중수부는 횡령혐의로 구속된 삼부파이낸스 대표 양재혁(梁在爀)씨 수첩에 정의원 이름이 6차례나 적힌 사실을 확인, 정의원의 금품수수 여부 등 개인비리 유무를 밝혀내기 위해 계좌추적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서초동이 온통 정의원 퇴출에 나서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의원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황상진기자
april@hk.co.kr
■'서경원 사건' 이란
서경원(徐敬元)전의원 밀입북사건이 10년만에 재조명되고 있다. 이 사건은 당시 큰 충격을 줬지만, 핵심 부분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89년 6월25일 안기부는 『서전의원이 현역의원 신분으로 88년8월 밀입북, 김일성(金日成) 등을 면담한 뒤 공작금 5만달러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서전의원은 『입북 2개월전인 6월22일 평민당 지도부에 방북사실을 보고했다』고 안기부에서 진술했다.
수사는 당시 평민당총재였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불고지죄 사건으로 확대했다. 안기부는 서의원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 5만달러 중 1만달러를 89년 9월초 평민당 총재실에서 김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서전의원은 변호인 접견에서 고문에 의한 진술이었다고 이를 부인했다. 이 때문에 김대통령은 안기부에 강제구인돼 21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다시 서울지검에서 15시간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러나 김대통령이 실제로 1만달러를 수수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서전의원이 귀국인사를 가면서 흰종이에 포장한 선물을 들고 갔다」는 서전의원 비서관의 진술 등을 제시했으나 법정에서도 결정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해 91년5월 김대통령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서전의원은 90년4월 항소심에서 간첩죄로 10년형을 선고받은 뒤 8년반을 복역하다 지난해 4월 특사로 풀려났고, 다시 지난 3·1절 특사에서 복권됐다.
당시 안기부수사는 서동권(徐東權)부장, 안응모(安應模)1차장, 대공수사국장이던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성민기자
gaia@hk.co.kr
■[서경원 사건] "명예훼손 확인위해 고문부분도 수사"
임승관(林承寬)서울지검 1차장 검사는 12일 『서경원 전의원 밀입북 사건에 대해선 정형근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된 내용의 범위에서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전의원 밀입북 사건을 전면 재수사 하나.
『전면 재수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공소시효가 지난 고문부분도 명예훼손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수사할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참고인 조사를 하나.
『대통령은 당시 진술을 완벽하게 했기 때문에 다시 조사할 필요가 없다』
-당시 검찰이 김대통령을 기소했다가 공소를 취소한 이유는.
『김대통령은 서전의원의 회합통신과 잠입탈출 혐의를 불고지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91년 5월 국가보안법이 개정돼 불고지 적용대상 범죄가 축소됐다. 1만달러를 받은 부분은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사안이 경미해 공소가 취소됐다』
-서전의원은 당시 김대통령에게 밀입북 사실을 보고했나.
『김대통령은 서전의원의 얘기를 듣고 크게 나무란 뒤 서전의원을 자수시킨 것으로 돼 있다. 당시 공소장에는 대통령이 자수 2개월전 보고받은 것으로 돼 있다』
-고소장은 4월에 접수됐는 데 뒤늦게 조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국민회의가 정의원의 「빨치산」발언과 관련, 새로운 고발을
/박일근기자ikpark@hk.co.kr>해왔다』
/박일근기자ikpark@hk.co.kr
■[서경원수사] 한나라, "정형근 죽이기다"
한나라당은 12일 서경원 전의원 사건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정형근 죽이기」 「언론대책 문건 국면전환용」으로 규정, 거세게 반발했다.
하순봉(河舜鳳)총장은 『국정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당 차원의 총력대응 방침을 밝혔다. 총장간의 물밑 접촉 등으로 간신히 터 놓은 정국정상화의 물꼬가 다시 막힐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선거법 등이 합의 처리될 단계에 이르더라도 정의원을 잡아넣겠다고 하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여권의 제 눈 찌르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당직자는 『이 사건은 과거에 여야가 정치적으로 덮었던 것』이라며 『사건의 전 과정을 되짚을 경우 상처를 입을 쪽은 여권』이라고 주장했다.
정형근의원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1만불을 전달했다는 혐의는 검찰에서 밝혀낸 것』이라며 『이 때문에 검찰은 후한 점수를 받았고 당시 안기부는 견책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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