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반납하는 사회다. 씨랜드 화재참사로 아들을 잃은 전 여자하키 국가대표선수 김순덕(金順德)씨에 이어 최근 퇴직교사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훈장을 국가에 되돌려주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수십년간 공직에 근무했거나 국가를 위해 봉사했음을 인정하는 훈장은 개인에게는 명예이자 가문의 영광일 수도 있다. 그 훈장이 땅바닥으로 내팽개쳐지고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심한 김씨는 어린 생명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탓하며 발길을 돌렸다. 성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명퇴교사와 독립운동가 후손의 훈장반납도 정부의 권위실추를 반영하고 있다.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의 후손 7명은 연금혜택도 받지 못하는 허울뿐인 선조들의 빛바랜 훈장을 지난 1일 국가에 돌려주었다. 이에 앞서 명예퇴직 교사 22명도 정부가 정년단축에 따른 명예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훈·포장을 무더기로 국무총리실로 보냈다.
이처럼 훈장의 권위가 실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훈장이 남발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5공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성공하자 거의 곧바로 진압군인 79명에게 각종 훈장을 수여했다. 반면 장 면(張 勉) 전총리는 탄생 100주년인 지난 8월27일에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국가에 대한 공헌도의 평가기준이 시대와 정권의 지향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체계가 붕괴되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린다. 요즘 계속 터지는 일들을 보면 앞으로도 훈장의 가치가 더 떨어질 것 같다.
/정정화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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