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말해 봐. 조형사(한석규)가 결국은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는 채수연(심은하)에게 하는 말이지만, 「텔 미 썸딩」(Tell Me Something)은 영화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보고 난뒤 말을 많이 하게 한다. 어찌됐든 한국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논쟁적이다.하드고어 스릴러를 표방한 「텔 미 썸딩」 은 수많은 의문들을 남겨 놓았고, 「범죄와 종말」이란 전통적 관습을 깬 열린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관객은 다시 한번 영화를 곱씹어 보고 극단의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스릴러의 치밀한 구성과 인과관계, 설득력을 중요시하면 엉성한 영화가 되고, 그보다는 상황을 재생하면서 퍼즐처럼 영화에 빠진 것들을 찾아 맞추면 할리우드와 다른 방식과 고정관념을 깬 매력적인 스릴러가 될 것이다. 물론 「접속」의 장윤현 감독은 후자를 의도했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사체가 절단되고 그중 일부가 없어진다. 없어진 팔과 다리는 다음 살해자에게서 나타난다. 희생자들이 모두 미모의 여성인 채수연의 애인었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이다. 사건을 맡은 경찰대학 출신의 조형사와 바닥에서부터 잔뼈가 굵은 오형사(장항선). 차례로 용의자로 떠오르는 채수연의 친구 오승민(염정아)과 채수연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박물관 동료 김기연(유준상).
잔혹과 긴장, 추리와 반전의 장치들을 그러나 「텔 미 썸딩」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살인은 현장이 없고 결과만 있으며, 조형사는 감상적이다.
채수연의 범행 동기 역시 어릴때 아버지로부터의 폭행이란 단서만 제공할 뿐, 연쇄살인의 동기인 정신병적 징후들을 보여주지 못한다. 오승민과 채수연의 동성애적 관계도 영화의 반전을 노리기보다는 채수연의 존재를 강조하는 치장에 불과하다. 결정적 단서도 범인의 실수에 의해 드러난다.
설득력이나 긴박감보다는 조형사가 다중적인 채수연의 실체를 알려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느낌에 치중한다. 비가 오고 어둡고, 정적인, 다분히 느와르적인 우울하고 허무적인 연출은 영화를 「세븐」 처럼 세기말적 감상주의로 끌고 가 관객을 영화에 취하게 한다. 자동차 충돌 장면이나, 조형사가 범인에게 쫓기는 장면은 정적인 영화에 균형을 잡아주는 인상적인 액션들이다. 그렇더라도 한석규의 습관적 연기, 심은하의 단선적인 모습까지 양해되는 것은 아니다.
「접속」의 장윤현 감독,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에 강우석의 시네마서비스 배급의 「텔 미 썸딩」은 최고만을 모은 영화답게 13일 사상 최다인 전국 114개 상영관에서 개봉된다. 11일 현재 서울극장 예매만 3,000여장. 펑가야 어떻든 이미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아마 그 이유는 논리보다는 느낌으로, 설명보다는 『묻지마』가 유행인 신세대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 ☆은1/2, 한국일보 영화팀평가)
하드고어(Hard Gore) 스릴러 고어는 피, 선혈. 인체의 내장이 노출되거나 사지를 절단해 유기하는 잔인한 영화. 피가 흥건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텔 미 섬딩 장윤현 감독] 영화 본후 많은 이야기 나오길 기대
-「텔 미 썸딩」은 이전의 스릴러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등장인물의 배경을 많이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둘씩 가지를 쳐나갔다. 「접속」이 단절 끝에 소통이라는 결말이 나오는 것과달리 이번에는 단절만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더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2시간40분짜리를 2시간 분량으로 줄이다 보니 정보제공 측면에서 뜻하지 않게 빈 곳도 있을 수는 있다』
-시사후 「복기(復棋)」를 해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토리가 단절적이다. 의도한 바인가.
『당연하다. 「양들의 침묵」 「세븐」 등 몇 영화를 제외하고 할리우드 스릴러는 모두 형식이 비슷하다. 그런 느낌을 피하고 싶었다. 배우의 표정이나 관계를 통해 영화 분위기를 전달하고 장르적인 복선이나 암시는 배제하고자 했다. 정신병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질병이다. 그러한 단절적 증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석규의 연기는 단조롭고, 심은하의 연기는 피상적으로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한다. 영화는 조형사가 수현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동선을 따라가도록 돼있다. 배우끼리의 교감장면이 별로 없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심은하에게 처음에는 범인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는 피해자의 연기를,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범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본격 하드 고어영화에서는 사체의 유기와 훼손을 통해 이질적인 쾌감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이 영화에서 사체는 살인의 결과물일 뿐이다. 하드고어라는 수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전통적 하드고어 영화와 비교해서 피의 양이나 시체 훼손의 쾌감 부분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사체는 비극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넓은 의미의 하드고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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