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의대(학장 정해륜·丁海崙 교수)에서는 해부용 시신을 기증한 고인의 넋을 기리는 「99감은제(感恩祭)」가 열렸다. 잔잔한 늦가을비가 캠퍼스를 적시는 가운데 교정에 서있는 감은탑(感恩塔)에는 28명의 이름이 새로이 새겨졌다.78년 이 학교를 졸업한 김태식(金泰植·47·서울 강서구 사랑의의원장)씨는 이날 사랑했던 가족 둘의 이름을 이 탑에 새겨넣었다. 지난 3월 숙환으로 작고한 아버지 명용(鳴龍·80)옹(翁)과 5월 백혈병으로 숨진 큰아들 유성(有星·17)군의 이름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씨는 가족과 함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의료선교활동을 펼치던 96년 아들이 백혈병 증세를 보이자 귀국했다.
같은해 12월부터 모교 병원에서 아들의 치료를 받던 중 김씨는 후배들이 해부용시신이 없어 수업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비롯, 부모와 부인, 아들의 시신을 사후 기증키로 약속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곧바로 17살 아들이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생을 접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의 육신이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김씨의 부인 이재고(李在高·42)씨도 유성군이 세상을 떠난 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소아암(癌)이나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어머니 모임인 「무지개 사랑회」를 결성해 봉사활동을 하며 아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정서상 고인의 시신에 칼을 대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학발전을 위해서 해부용 시신의 확보가 매우 절실합니다』 정학장은 『올해 28명을 비롯, 94년부터 시신기증사업을 펼쳐온 이래 현재까지 129명이 육신을 맡겨왔고 1,054명이 사후 기증을 약속했다』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고인과 그 유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전했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