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명씩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의 인사는 한결같다. 『요즘 무슨 프로그램해요?』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얘기하면 『와, 아직도 그 프로그램 해요?』 나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한 번 맡은 프로그램은 상당히 오랫동안 해왔다.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8년 동안, 지금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도 처음부터 3년이 넘게 계속 써오고 있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더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면 한 프로그램이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봄, 가을 개편 때마다 PD와 작가들은 새 프로그램으로 옮겨 다닌다.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 PD들이 바뀌기 때문에 그때마다 새로운, 다른 색깔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같은 느낌의 프로그램을 오래 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작년 겨울 도쿄(東京)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일본의 음식점들을 체험하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아주 작고 허름한 음식점들…보통 3대 이상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음식점들이라 그저 작고 허름한 집에만 가면 무조건 맛이 좋았던 부러운 기억…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엔 그렇게 오래된 가게를 찾기가 힘들다. 조금만 장사가 안되어도 다른 업종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래서 오래전 추억을 건드려줄 장소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초창기에는 누구도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될 줄 몰랐다. 하지만 다른 쇼보다 더 느리게, 더 꾸미지 않으려 노력했고, 좋은 음악인들을 초대하는 것에는 욕심을 냈지만, 다른 치장에는 최대한의 절제를 지키며 우리만의 색깔 만들기를 해왔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녹화를 하다보니 어느덧 150회의 공연. 얼마전 프로포즈 3년 특집 방송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름을 내건 쇼 중에 가장 오래된 쇼가, 이제 겨우 3년밖에 안된 「이소라의 프로포즈」라는 것을.
미국의 레터맨 쇼처럼 장수하는 쇼 프로그램이 더 많아질 수는 없는걸까? 제작자들과 시청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프로포즈와 같은 음악 토크쇼는 아마 지금이 막 차를 탄 것 같다고, 시대적인 상황이 더 이상 이런 분위기를 남아있게 하지 않을거라고.
친구집에 초대한 듯 편안한 얘기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 없어진다면, 대신 현란한 사이버와 테크노만 봐야 한다면? 첫눈과 첫사랑에 대한 얘기는 어디서 해야하나? 밀레니엄을 더 소박하게 더 따뜻하게 맞고 싶다.
/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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