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가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를 판별하는 유일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과학분야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판별기준 중의 하나가 객관적 세계, 주관적 세계 및 이들 두 세계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제도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이다.객관적 세계는 그 사회의 경제적 상태를 반영하는 1인당 국민소득, 소득분배, 공해 및 환경수준 등이 그 지표로 활용된다. 주관적 세계는 그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기준, 지식수준 및 신념 등 의식수준이 이를 반영하며 상당부문 객관적 세계와 혼재되어 제도적 장치로 표출된다.
정부 법률 가정 풍습 다양한 조직 등이 이에 속한다. 제도적 장치가 형성되면 이는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의 상호적인 규제를 통하여 두 세계의 미래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특히 중차대하다.
4반세기 동안 한국은 경제성장이란 객관적 세계의 발전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에 부응하는 주관적 세계나 제도적 개선은 어느 정도였는가를 반문하면 우리가 과연 선진국민이 될 수 있을까, 회의에 빠지게 된다.
최근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선진국민이 될 수 없다』는 확신에 갈등과 번민을 체험한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성싶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 씨랜드 참사와 같은 재난이 엊그제 일이었는데 이러한 인재(人災)를 또 당해야만 하는가.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반성의 여론이 들끓고, 책임자가 문책당하지만 제도적으로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은 채 곧장 잊혀지고 또 다른 재난을 당하는, 우리는 분명 3등 국민이다.
안전불감증 치유차원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영원히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이번 재난을 부조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모든 제도의 일대혁신의 계기로 삼고 안전보다 이익추구를 우선시하는 성장일변도 황금만능의 주관적 가치기준의 변혁을 일구어 내는 일대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가 오늘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에는 리콴유(李光曜) 전 총리의 단호하고 부단한 준법교육과 이를 위반할 때 예외없는 형벌을 부과한 것이 밑바탕이 되었다. 총리 재직시 친구인 각료가 수뢰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예외없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계기로 삼았는가 하면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시민들에게까지 벌금을 엄격히 부과하는데 이르기까지 위법행위에 대해 일벌백계의 반대급부를 실천함으로써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 정부생산성 으뜸의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십 년 전 우리 수준에 불과하던 개도국 싱가포르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된것이다.오늘날 선진국이 된 국가들을 눈여겨 관찰하면 한결같이 그 이면에는 대다수 국민들의 우둔할 정도의 준법정신이 기초가 되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행자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지켜지는 교통법규는 어느 선진국에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준법정신과 수준높은 질서의식의 사례이다.
그러나 우리네 실정은 어떠한가. 교통사고율 세계 상위국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도 70%이상이 교통법규 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 선진국이 이렇게 부러울 정도의 준법정신을 보유하게 된 공통적인 이유 중의 가장 으뜸은 유아원 교육에서부터 철저히 이루어지는 준법교육과 질서교육 덕분이다. 준법교육은 커녕 알파벳 교육이 유아원교육의 중심이 되고 있는가 하면 전인교육은 커녕 아직도 대다수 중·고생들은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정치인들이여, 이제 정쟁을 중단하고 준법정신 함양을 위한 제도개혁을 입법하고 실천하는데 국가정책의 최우선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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