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착오희극」을 고교시절 여고생 무대에서 구경했다. 극의 구도는 춘향전과 비슷하지만 춘향과 이도령, 향단과 방자가 모두 쌍둥이이고, 셰익스피어답게 주인과 종복에 고루 비중을 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쌍둥이 4쌍, 8명이 제각각 사랑행각을 벌이면서 착각과 혼선으로 해프닝을 거듭, 폭소를 연발케 한다. 하나같이 동글납작한 당시 여고생들이 분장까지 했으니, 요즘 영화나 드라마도 그만큼 절묘한 혼돈을 연출하긴 어려울 것이다.■무려 30년전 무대를 떠올린 것은 우리 정치권이 언론대책 문건을 소재로 국민이 보는 열린 무대에 올린 정치공연의 못말릴 혼돈상 덕분이다. 배역부터 정보기관출신 여야 정치인 2명과 종복 노릇한 기자 2명에 여야 대변인과 지도부 등등, 모두가 셰익스피어의 탁월성이 그린 「착오희극」 못지않게 닮은 꼴이다. 이들이 온갖 억지와 궤변, 위선과 몰상식으로 본질과 핵심을 뒤집고 또 뒤집으며 만드는 기막힌 혼돈상엔 셰익스피어도 울고 가야 할 지경이다.
■셰익스피어극에서는 관객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혼돈의 진상을 처음부터 알고 있고, 배우들은 오직 보는 재미를 위해 혼돈을 연기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공연은 관객들이 짐작하는 진실조차 마냥 숨기고 위장하면서도, 서로 믿어 달라고 싸움질이니 딱하다. 관극의 재미나 산뜻한 해피엔딩은 커녕 짜증만 쌓인다. 어설픈 배우들은 서로 퇴출을 외치지만, 연극발전과 국민 정신건강, 아동교육을 위해 난장판 무대를 걷어치우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치무대의 희극을 보는 국민은 늘 서글프다. 언론과 시민단체도 국민을 우롱하는 무질서를 탓하기보다 좋아하는 배우를 편들어 비극성을 더한다. 끝내 검찰이 무대에 올라 천방지축 설치는 배우들을 줄세워 앉히는 단골 악역을 맡는 진부한 클라이맥스 설정은 한층 딱하다. 정치와 따로 선 검찰, 검찰없는 정치는 이래서 요원하다. 검찰·언론개혁을 부르짖기에 앞서, 재미도 교훈도 없는 사이비 부조리극만 공연하는 비극적 정치판부터 개혁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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