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통일과정은 통일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민족통합과 국력회복은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엄청나게 드는 통일비용과 동서간의 심리적 갈등, 실업문제는 통일을 망설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독일의 통일과정은 「분단국의 완전한 통합에는 오랜 준비기간과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특히 동·서독의 화폐통합 문제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었다. 통일전 연방 재무부와 금융계, 경제자문위원회 등 서독 경제인들은 단계적 통합을 지지했다. 동독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동독의 마르크화를 태환가능한 화폐로 만든뒤 서독의 마르크화와 통합해야한다는 논리였다. 단계적 통합은 그러나 동독인의 대규모 이주물결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동독 마르크화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할 경우 누구나 서독 마르크화를 벌기위해 대거 서독으로 몰릴 것이기때문이었다.
당시 헬무트 콜 수상은 동독 주민의 이주를 막고 서방국가의 동독지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화폐통합의 조속시행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결국 동·서독 정부는 동독인의 임금 봉급 연금 등은 1대1로 교환하되 은행에 예치한 현금은 2대1로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교환 비율의 차이로 손해를 본 은행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상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같은 교환 비율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긍정론과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맞서있다.
군사통합만 하더라도 동서 냉전의 산물인 지뢰제거에만 4년여의 시간이 소요되고 병영재건에 36억마르크가 투입된 고된 작업이었다. 몰수재산의 처리를 둘러싼 시행착오, 동독 공산당의 불법행위와 경제범죄 처리 등은 통일이후 독일을 괴롭힌 골치아픈 문제였다. 한 대학의 원로교수는 이와 관련, 『통일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분단 당사자간의 꾸준한 대화와 접촉노력이 필수조건』이라며 『통일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많은 비용과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독일통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독일의 연방 내무부에서 통일과정을 연구했던 한 공무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자유 평화 통일이라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했다. 독일 국민은 「자유나 평화를 희생해서라도 통일을 이루겠다」는 통일지상주의에 빠진 적이 없다. 동독을 외국이 아닌, 하나의 특수관계로 파악하고 「1민족 1국가」임을 대내외에 꾸준히 강조해 왔다. 「하나의 독일」이라는 틀안에 동독을 묶어두고 모든 접촉과 교류를 국내교류로 처리했다. 동독이 붕괴된 후에는 민족자결(自決)의 원칙 아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2차대전 승전국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독일인 스스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한 것이 통일을 앞당긴 계기가 됐다』
동독지역의 한 주정부 공무원은 상호접촉을 강조했다. 그는 『힘의 우위를 확보한 측이 통일을 주도하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한국의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교역과 동질성 유지에 중점을 두면 긴장이 완화되고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이 다양한 평화유지 장치를 마련한 바탕 위에서 교류와 접촉을 일상화해 통일을 이뤄낸 과정은 깊이 음미할만한 부분이다.
베를린=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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