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위법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상응하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법 앞의 평등원칙이 적용되는 법치국가에서는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위법사실이 없다면 단순히 경영에 실패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경영진에 대해 어떠한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음도 당연하다. 이와 같이 기업도 법질서 내의 존재인 이상 기업경영에도 법치주의가 적용되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경영진은 불법적인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되며 타인의 재산을 관리, 처분할 포괄적 권한을 위임받은 자로서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하고, 나아가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앞세우는 충실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회사의 경영진이 자기 자신이나 특정 대주주 또는 다른 계열사 등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가 속한 회사의 이익을 고의로 희생시킨다면 이는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범법행위로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경영진은 경영과실에 따른 민사상 책임은 물론이고 업무상 배임 또는 횡령 등의 형사책임도 져야 한다.
현재까지의 실사결과를 본다면 대우 계열사에 대한 감사보고서 등이 조작된 것으로 의심된다. 만약 조사 결과 기업회계기준을 위반하였거나 고의로 장부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면 담당 경영진과 회계사는 관련법령에 따라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채권자를 속여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고의로 장부를 조작하였다면 사기죄의 여부도 검토될 수 있으며 업무상 횡령 또는 배임과 같은 위법사실이 밝혀지면 기아 김선홍 회장의 예에서 보듯이 법대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관계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지만 대기업의 경영진이라고 해서 법 앞의 평등원칙의 예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경영진에게는 경영판단에 관하여 재량권이 있으므로 가능한 한 경영진의 행위는 면책되어야 한다거나 가급적 법은 경영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부실화한 원인은 경영상의 재량권이 적었던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총수에게 너무 많은 재량권이 주어진데 있다고 보면 잘못된 판단일까. 이제 우리나라도 대기업과 그 경영진에 대해 관용보다는 법치를 우선하여야 할 지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김석연·변호사·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반대
불과 2년전 한국을 빛낸 기업가 3인으로 선정되었던 김우중(金宇中) 대우회장이 1일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67년 창업 이후 한국의 해외시장 개척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궈낸 대우신화가 세계경영이라는 화려한 꽃을 채 피우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이다.
대우그룹의 성장은 수출입국이라는 국가목표에 가장 잘 부합한 성공사례였다. 매출에서 수출의 비중이 50%를 상회했고 5대그룹 내에서도 가장 높았다. 더욱이 외환위기가 오기 전 이에 대비한 경영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국가적인 신용붕괴와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500억달러의 무역흑자가 필요하다는 국가적인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대우의 경영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재벌의 금융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제한조치를 내놓았고 IMF의 이름아래 재벌의 자금줄을 더욱 조이는 작업을 실행했다. 또한 무리한 빅딜이 추진되면서 대우그룹은 안타깝게 허물어졌다.
기업인이 지나친 애국심을 발휘하는 것이나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이나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다. 좌초된 대우그룹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들은 우리 경제에 반드시 필요하고 앞으로도 활용해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청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속히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부실경영을 했다고 해서 경영자에게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를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현재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우그룹의 경영자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가 이를 철저히 감시할 필요도 있다.
경영정상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사법처리를 의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에는 외환위기를 초래했고, 지금은 위기를 심화시킨 빅딜을 강요한 경제정책 책임자가 사법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은 늘 경영판단을 필요로 한다. 사업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사후적으로 부실이 발생했다고 해서 잘못된 경영판단의 책임을 경영자에게 묻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최승노·자유기업센터 기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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