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술은 밀레니엄을 앞둔 우리 사회의 대안(代案)이 되고 있는가. 미술의 역할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 유연한 생활방식을 드러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면 화랑에 걸린 귀엽고 깜찍한 그림들은 단지 바라만보는 미술품일 뿐, 대안이 되기엔 역부족이다.그러면 관객과 호흡하는 작품이란?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교수는 『예술활동은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에너지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방법으로? 김성원 동덕여대 겸임교수는 『90년대 세계미술은 점점 컨셉과 방법이 다양해지는 추세』라면서 『작품이 아니라 이벤트에 가까운 유형들의 작업들』 이라고 분석한다.
경기 이천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2000 공장미술제」(10월 23일-11월 22일). 계원예술대 경원대 이화여대 서울대 세종대 홍익대 한성대 등 8개 대학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100명이 대지 3,000평, 건평 700평의 폐허처럼 변한 공장을 빌어 펼치고 있는 미술제는 관객과 호흡하는 90년대의 미술이란 과연 무엇인지 현장체험케 하는 장이다. 그들의 실험정신은 소위 「제도권」 미술에선 엄두도 낼 수 없는 도발적이고 직접적인 이슈들로 가득 차있다.
젊은이들의 작품의 소재는 100% 우리의 「일상」이다.
양희아(성균관대·게스트)씨의 「악당 괴롭히기」.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남을 등쳐먹는 사람 등을 위해 그는 악당용 의자(달걀처럼 생긴 공을 여러개 앉는 부분에 설치), 닭발 머리 보호대(이름은 보호대이나 망사로 만든 주머니의 끝을 당기면 머리가 조여지고 붉은 닭발이 머리를 콕콕 찌르게 한 장치), 목덜미 집게(악당을 벽에 고정시키는 장치) 등 기구를 설치했다. 그는 『이 기구를 만들다 어쩌면 악당은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게이라고 밝힌 김두진(서울대)씨는 작품 「게이방」에서 결코 제도권 미술안에선 자유로울 수 없는 동성애자의 삶을 처음으로 열린공간 안으로 이끌어냈다. 이 사회에서 이방인의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려면 상징적인 의미의 「비자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은수(이화여대)씨는 「엉성한 그래픽」을 통해 실제 자신의 삶을 이미지화해 히스테리, 몸, 공간,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겹친 얼굴의 이미지는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이현진(서울대)씨는 공장에서 못쓰게 된 종이상자들을 무질서하게 쌓은 후, 폭포의 물줄기를 담은 「입체영상폭포」를 통해 바위에서 물이 흘러 떨어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임휘영(한성대)씨는 조기축구회의 마크가 모아 평면작업에 옮겨 놓았고 주명선(계원예술대)씨는 부엌의 소리(찌개 끓는 소리, 설거지 하는 소리, 칼질하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통해 결혼 생활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김경희, 김지영(경원대)씨는 사무실에서 일하던 화이트칼러들이 공장으로 옮기면서 푸른 옷을 입은 노동자들과는 좀 더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새로 만든 푸른 옷으로 화이트칼러의 우월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김창겸(세종대)씨는 격렬한 부부싸움 끝에 아내와 이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자신과 아내의 생생한 육성에 담아 작업했다. 이외에도 건강 때문에 군면제를 받았던 조습(경원대)씨는 늘 자신을 무겁게 짓눌렀던 사연들을 군복을 입은 다양한 사진에세이로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했다.
이번 전시회 총큐레이터를 맡은 이영철씨는 『두달간의 짧은 준비기간, 턱없이 작은 예산으로 마련한 전시회였지만 젊은이들과 작품을 놓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만의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창작욕구를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진상 계원예술대교수는 『젊은이들의 고정되지 않은 사고, 탐색의 자세, 물질을 다루는 감성은 기대 이상이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문의 (017)277-3891
이천=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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