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얼굴 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다. 전화로 원고 청탁이나 강연 요청을 받을 경우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의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마 내 나이 탓도 있지만, 존대말을 헷갈리게 쓰는 때문도 있는 것같다. 우리 말의 복잡다단한 존칭 체계가 좀 단순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것도 그런 대화를 통해 요즘 젊은이들이 존칭때문에 얼마나 혼란을 겪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져서이다.20-30대의 기자가 나를 부를 때 성명에다 선생님 정도를 붙이는 게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교수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단지 「씨」자만 붙이기도 한다.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 나는 한 번도 대학에 강의 나간 적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교수님이라고 할 때는 아부를 좋아하는 사람 같아 호감이 안간다.
전에는 「씨」자만 달랑 붙이는 걸 좀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보다는 오히려 편하다. 고유명사에다 「씨」만 붙이면 존대말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맙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고마워요」하는 것도 전에는 귀에 거슬렸는데 「요」자만 붙여도 존대말로 쳐줘야지 않을까 눙쳐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박완서씨 고마워요」하는 정도 밖에 존대말을 못쓰는 젊은이도 내가 그쪽 성명을 물어보면 김철수라고 말하지 않고 『「김」자 「철」자 「수」자 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다가는 제 자식 이름도 『우리 아기는 「나」자 「리」자 입니다』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남 앞에서 윗어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무엄하다 하여 꼭 성함을 밝혀야 할 경우 한 자 한 자 「자」자를 붙여 부르게 한 게 점잖은 댁의 자녀교육이었다고는 하나 요즈음 세상에는 안그래도 크게 책잡힐 것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름은, 꼭 한자로 무슨 자인가를 밝혀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끙끙대며 그렇게 말하는 젊은이를 보면 안쓰럽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게 복잡하면 기본정신보다는 쓸데 없는 것부터 익히게 되는 것같다.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이 신발 엄마께서 사주신거야』라고 말한다면 고쳐줘야 할 틀린 어법인데 요새는 TV에 나와 재롱부리는 똑똑한 어린이까지 『엄마께서 아빠께서』라고 말하니까 「께서」 대신 「가」를 쓰는 어린이는 가정교육이 덜 된 어린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존대말의 기본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에서는 별로 문제될 게 없을텐데 가장 대등한 관계인 부부간의 호칭이 오히려 가장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서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신혼부부에게 『여보 당신이란 좋은 말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더니 꺄악 소리를 지르며 닭살이 돋을것 같다나. 「여보」 「당신」이 좀 드라이하긴 해도 닭살이 돋게 징그러울 건 또 뭔지 잘 이해가 안된다. 나야말로 닭살이 돋는 것은 요즘 새댁들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걸 들을 때이다.
스타에게 열광하던 오빠부대일 적의 환상을 내 남자에게 전이시키고 싶은 소녀취미는 연애기간에 대충 졸업해야지 않을까? 결혼은 그 어느 누구와 바꿔치기 할 수도 없고, 착각해서도 안되는 유일한 남자와 여자와의 만남인 동시에 양가의 가족이란 그물 안에 편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성인 남편을 가장 가까운 근친을 부르는 호칭으로 부른다는 건 망칙스럽기도 하거니와 기존의 조화로운 관계망을 혼란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설사 여자에게 오빠가 없다고 해도 장차 아들도 낳고 딸도 낳게 될 게 아닌가. 여보 당신이 싫으면 서로 이름을 부르자. 이름은 자신을 존재케 한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과 꿈이 담긴 선물이고 자신이 남과 다른 고유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한 최초의 울림이고 자신이 지닌 것중 가장 오래 된 것이고 무엇보다도 부르라고 지어준 것이다.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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