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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막전막후] 상명연극실험실 '중국의 장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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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막전막후] 상명연극실험실 '중국의 장벅'

입력
1999.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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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연극실험실의 「중국의 장벽」에는 역사가 자유롭게 풀어 헤쳐지고 있다. 막스 피리쉬의 대표작 「만리장성」을 텍스트로 한 작품이다. 해설자가 등장, 극의 단서를 제공하고 때로는 극에 참견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서사극. 24장으로 나뉜 원작에 각종 음악과 극적 장치를 도입, 빠른 호흡으로 밀어 붙이는 속도감이 젊은 관객들의 발길을 부른다.막 올리기 전, 경쾌한 록이 흐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왼켠 벤치에 앉아 서로의 몸을 의지한다. 무대 뒤 막에는 만리장성이 영사되고, 넥타이 차림의 해설자는 그 유래와 내력을 설명한다. 그와 함께 나폴레옹 부루터스 콜럼부스 등 역사적 인물들이 당시의 복식을 입고 줄지어 나온다. 중국의 헐벗은 모녀가 서로를 부여안으며, 그 행렬을 뒤따른다.

징기스칸 치하의 중국이다. 30번이나 검문을 용케 피해 수도를 보러 온 무지렁이들. 그들은 왕의 눈꼽만큼도 안 되는 존재다. 그러나 북경은 「백성의 목소리」라는 유령같은 존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결코 화해될 수 없는 대결. 이 둘 사이에 황제의 딸 미란이 있다. 청순한 그녀는 그에 대한 꿈을 꾼다.

「백성의 목소리를 한번만이라도 볼 수는 없을까?」 공주의 청순한 호기심에 미래의 사나이(해설자)가 다가가 핵미사일, 컴퓨터 따위에 대한 설명을 늘어 놓는다. 시공을 마음대로 초월하는 다양한 장치들도 인상적이다. 슬라이드나 음향 등 자료를 적극 사용한다. 때로는 전면만을 보고 연기하는 등 다양한 서사적 기법의 구사가 극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드럼을 라이브로 연주하기도 한다.

서사극적 기법, 즉 이 극이 무대 상황에 대해 관객의 거리두는 방식은 해설자의 등장이 절정. 그는 이어질 상황을 예견하기도, 의문을 던져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때로는 상황속에 뛰어 들기도 하며, 극의 속도감을 조절한다. 이 극은 해설자라는 존재를 극적으로 어떻게 용해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안으로도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때로 바로 앞 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참견하기도 한다. 『다 알아요, 다 알아요』라며 슬쩍 등장한다. 모두 다 아는 사실들, 그러나 실은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실들. 그 사이에 이 연극은 존재한다.

등장 인물은 서로에 대해 참견하는 듯 하지만, 실은 어느 누구도 대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극은 서사극이면서, 또한 부조리극이다. 14일까지 학전 그린소극장. 매일 오후 4시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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