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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차가운 갯벌위 쓰러진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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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차가운 갯벌위 쓰러진 고니

입력
1999.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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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끝나는 날 해뜰 무렵이었다. 영하 15도의 혹한이 밀려와 있었고 갯벌에는 하얗게 성에가 끼어있었다. 고향에서 방학을 보낸 형과 나는 그날 등교하기 위해 쌀자루와 책가방 한개씩을 들고 노도를 건너고 있었다. 첫차를 탈 참이었다.고향 섬과 육지 사이에 펼쳐있는 갯벌의 너비는 약 3㎞였고, 노도는 갯벌을 건너기위해 돌담을 쌓듯 만들어놓은 길이었다.

노도 머리를 들어서는데 펄밭에 흰옷 입은 사람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아니, 무슨 거대한 새 한마리인듯 싶기도 했다.

『아하, 저것 고니라는 새다. 아마 너무 추워 다리나 날개가 얼어붙어 날지못하는 모양이야』

형이 말했다. 고니는 노도에서 10㎙ 쯤 떨어진 곳에 주저 앉아 있었다. 나는 달리 생각했다. 다리나 날개 어느 부분을 총에 맞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형이 시험삼아 돌맹이 한개를 던져보았다. 고니는 우리를 멀거니 바라볼 뿐 날아가려 하지 않았다.

『고니 잡아다가 집에 가져다주고 가자. 저놈 하나 잡았으면 식구들이 며칠 동안 국끓여 먹을 수 있겠다』 나도 형의 말에 동의했다.

『야, 너 신벗고 들어가서 잡아가지고 오너라』

형이 명령했다. 나는 신과 양말을 벗고 바지가랑이를 걷어올렸다. 성에 낀 갯벌로 내려갔다. 순간 발의 살갗 여기저기를 유리조각으로 에는듯한 차가움이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갯벌은 무르고 깊어 정강이까지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을 무릅쓰고 고니를 잡기 위해 나아갔다. 날개죽지를 잡을 수 있을만큼 다가갔을때 위험을 느낀 고니가 날갯짓을 했다.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대여섯 걸음 도망갔다.

형이 더 빨리 쫓아가 덮치라고 했다. 더 빠른 속도로 쫓아갔다. 고니가 잡히기 직전 여남은 걸음 달아났다. 다시 추적했다. 이번에는 고니가 잡히기 직전에 스무남은 걸음 달아났다. 제법 날개를 크게 벌려 날았다. 나는 고니를 잡을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다시 고니를 쫓아갔다. 내 예감이 맞아들었다. 고니는 성에 낀 갯벌을 허우적거리며 그악스럽게 쫓아오는 앳된 중학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먼 바다 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이제 생각하니 세상에는 그와 모양새를 달리한 고니들로 가득차 있었고 나는 그것을 잡으려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했다.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눈앞을 어질어질하게 하는 사랑이라든지….

/한승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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