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肉眼)은 흐릿하나 심안(心眼)은 건재하다」.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상당한 국정 수행력을 과시하고 있다.와히드는 취임때부터 앞을 거의 보지못하는 시력, 불편한 거동 등으로 인해 「핫바지 대통령」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실권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이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경제 재건, 과거 청산, 지역 분리 요구 등 하나같이 힘든 과제에 정력적으로 대처하면서 성급했던 서방 언론과 일부 분석가를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6일부터 5일 일정으로 계속되고 있는 동남아 8개국 순방외교도 복잡한 국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인도네시아가 정상화했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7일 추안 릭파이 태국총리와의 회담에서 동티모르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 가입을 원할 경우 태국이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유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와히드 대통령의 의욕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국제무대 데뷔전인 이번 순방에서 와히드 대통령은 정국 불안정으로 유출됐던 800억달러 가량의 자본 회수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 화교계 자본인 이 자금 중 160억달러 정도는 이미 환류시키기로 와히드와 화교 거상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울러 곧 차관 제공을 재개할 국제통화기금(IMF)에 중소기업과 농업 분야 강화를 골자로 하는 경제운용 계획의 수정을 요구, IMF를 압박하고 있다.
과거 청산과 지역 갈등 문제에서도 와히드는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불법 축재 수사를 재개하겠다며 「과거 청산」 방침을 밝혔고 발리 은행 스캔들에 현직 장관이 연루된 것으로 전해지자 『누구라도 즉각 해임하겠다』며 반부패의 의지를 다졌다. 얽혀있는 반부패와 과거 청산 작업은 하비비 정권 당시 집권 골카르당의 개혁주의자 마르주키 다루스먼 검찰총장이 뒷받침하고 있다. 아체 지역의 독립 요구에 대해서도 그는 4일 『아체 주민은 독립투표를 실시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히며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병찬기자 bckim@hl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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