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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교육의 삼중파산 -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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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교육의 삼중파산 - 송호근

입력
199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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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가 한국교육의 파산을 고백해야 하는 것은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은 한국교육은 이미 파산했다는 사실이다. 정언(政言)유착, 맹물전투기 추락, 호프집 참사와 그것으로 드러나는 부패사슬 등등의 가장 깊은 배후에는 시민정신 또는 공공의식과는 거리가 먼 한국교육의 현주소가 자리잡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의 지도층인 정치인과 언론인으로부터 시장상인, 군대의 창고책임자, 경찰에 이르기까지 자기검열의 긴장감을 벗어던지고 파행과 비리, 부정과 부패의 총체적 변주에 손을 담그고 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언론대책 문건으로 내홍상태에 있는 정치권은 그 불길에 타버리도록 그냥 내버려두자. 세금이 아깝기는 하지만 값비싼 전투기는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이며, 비리사슬은 더 정교하게 사회저변을 얽어맬 것이다.

그러나 인명희생은 중대한 문제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호프집 참사는 성급했던 교육개혁이 빚어낸 정책실패의 결과이다. 교육개혁으로 학교가 학생지도의 손을 놓자 청소년들은 너도나도 쾌락지대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교실을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즐겨 찾을 「합법적 은신처」가 마련되었어야 했다.

학교에서 사회로 교육의 책임이 넘겨지는 순간 사회교육을 담당할 시민들은 없었다. 아니, 시민들은 청소년들에게 정도(正道)와 법치(法治)를 조롱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가르쳐주었다. 김대중(金大中)정권의 교육개혁은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해결된 문제보다 해결을 기다리는 새로운 문제가 양산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교육은 삼중파산에 봉착했다.

첫째가 엘리트교육의 파산이다. 국가들의 각축전에서 경쟁력강화의 주역은 엘리트집단이다. 자원이 빈약한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던 것은 상위 5% 엘리트집단의 우수성 때문이었다. 엘리트집단에의 의존성은 첨단지식과 정보혁신이 경쟁력의 핵심요건인 정보화사회일수록 더욱 커진다.

그런데 한국은 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도대체 한국에는 미래를 짊어질 엘리트집단이 존재하고 있기나 한 것인가. 유럽국가들이 한국과 일본을 모델로 청소년들에게 공부짐을 늘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때 정작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냥 놀릴 수 있을까만을 궁리했다. 엘리트의 하향평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수목적고의 우수한 재원들이 대거 학교를 이탈해도 개혁명분 때문에 그대로 방치되는 실정이다.

둘째는 교양시민 교육의 파산이다. 부정과 비리를 견제하는 사회의 자율신경계를 보강하는 것이 대중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면 한국의 중등교육은 그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 이런 폐단을 고치기 위해 입시제도를 내신과 면접 중심으로 전환했는데 수요자들은 오히려 전과목 과외는 물론 논술 및 면접과외로 맞서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일종의 게임과도 같아서 정책의도와는 전혀 다른 기상천외의 결과를 빚고야 만다. 전국의 수재들을 모아놓은 서울대라고 해서 「교양을 갖춘 신사」 또는 시민정신에 투철한 사회의 파수꾼을 배양하는 것은 아니다. 「유용한 지식」에 밀려 「자유 지식」과 인문정신의 소중함이 퇴색한 지 오래다.

셋째, 비전의 파산이다. 교육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함께 이탈을 감행하는 현실에서 한국사회를 지켜줄 교육비전은 없다. 「교육자 개혁」탓에 교사들은 무능력자 혹은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해온 집단으로 규정되었으며 제자들에게 학비를 제공한다는 「두뇌한국 21」의 덫에 걸려 교수들은 교육부의 일방적 개혁계획을 군말없이 수용해야 할 처지에 있다.

우수한 학생들의 탈출러시는 학교의 공동화현상을 부추겼다. 이 마당에 누가 교육현장에서 「시민정신의 정화기능」을 붙잡고 있으랴. 교육의 파산은 한국사회의 파산을 예고한다. 요즘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더라도 놀랄게 없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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