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의 미물마저 곤한 몸만 뒤척일 때. 새벽 3시 반. 한 뼘의 빈 틈도 허락하지 않는 어둠. 순간. 청징한 목탁소리가 무섭도록 막막한 산사(山寺)의 어둠을 한 겹, 두 겹 걷어낸다.전남 순천에서 가장 높은,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도 등장하는 조계산(884m) 동쪽 자락. 천년 고찰 선암사(仙巖寺). 이 곳에서 4주간 교육과 수행의 시간을 거친 200명의 행자(行者)들은 6일 수계식과 함께 승복과 가사를 입고 중이 됐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그들은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했고 경전과 불법을 배웠다. 그리고 온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갔다.
■가장 낮은 사람 되기, 일보일배
태고종 본산 선암사에는 지난달 초 전국 방방곡곡에서 200명의 행자가 모였다. 여자도 43명이다. 불가에서는 수계(受戒·계를 받음)라는 의식을 거쳐야 승려가 된다. 체계적인 승려 교육에 승려 자질이 있는지를 평가받고 불가의 계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매일 새벽 예불-아침 공양(식사)-청소-오전 강의-부처님 공양-점심 공양-오후 강의-울력(노동)-저녁 공양-예불-참회 정진의 시간을 보냈다. 9시 반 잠들 때까지 머리로는 경전과 불제자가 걸어야 할 길을 배웠고, 몸으로는 수행법과 절간의 노동, 살림살이를 익혔다.
수계를 받기 하루 전날은 좀 특별하다. 절 입구에서 1㎞ 못되는 아래에 선암사 큰스님의 발자취를 담은 부도(浮屠) 자리가 있다. 줄지어 그곳으로 내려간 행자들은 거기서 절의 대웅전까지 한 걸음 떼고 한 번 절하는 일보일배(一步一拜)의 정진을 했다. 하심(下心). 길바닥에 절하면서 불심을 공고히 하고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기르는 수행이다. 승려가 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 줄지어 선 무리에서 얼핏 40을 넘겼을 여자 행자의 얼굴. 『석가모니불』을 외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고 있다.
■수계, 10가지 계율을 받다
수계식 날, 절간이 떠들썩해졌다. 속세로 치면 신병훈련소 퇴소식 같은 분위기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꽃다발을 든 축하객까지 볼 수 있다. 스님들이 다짐받은 계는 10가지.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음란한 짓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마시지 말라는 5계에다 높고 큰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 화장하거나 향수 뿌리지 말라, 노래부르거나 춤추는 것을 하지도 보고 듣지도 말라, 때가 아니면 먹지 말라, 보석과 돈을 지니지 말라. 『능지(能持), 능지, 능지』 불제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그러겠노라 다짐했다.
『지난해 수계를 받은 행자들은 130명이었는데 올해 갑작스레 35%나 늘었습니다』 태고종 교육부장 스님은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출가를 결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속세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입산이 현실 도피라거나 치기 어린 낭만 정도여서는 안되겠지요』
그래서 행자들은 수행하는 동안 필기 시험은 물론 면접 시험을 어렵게 치른다. 누구나 예상하고, 또 100% 나오는 질문은 『왜 승려가 되려는가』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 세상에서 도망나오고 싶었다든가, 절에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찾겠다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그럴 듯하게 둘러대도 표시는 나게 마련이다. 깎은 머리, 기름기 없이 말끔한 낯빛에 무엇을 숨길 수 있겠는가? 『포악하지 않은 심성, 큰 사람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승방에서 기거할 자격이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사람 속으로
대전이 고향인 지운(智云·40) 스님은 계를 받고 대전 보문산에 있는 은사 스님의 절로 되돌아갔다.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10여 년 동안 조그만 사업도 벌였고, 농장도 꾸렸고, 잡지에 글도 썼다. 결혼해 11세·9세아이들까지 가졌다. 하지만 그는 괜찮던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과 보낼 세속의 날들을 포기했다. 『빈부의 골이 깊어지고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일문(一門·20) 스님은 고등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다니다가 공부하고 싶어 동방불교대학(2년 과정)에 들어갔다. 거기서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번에 수계를 받았다. 『수행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앞으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뛰쳐나온 승려는 조금은 겁도 나고, 얼떨떨한 모습이다.
이들은 세상을 버린 사람들일까? 때묻고 번잡한 속세를 떠나 오로지 자신만이라도 청정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걸까? 지운 스님은 『돌아가서 절 주변에 부랑아 합숙시설을 짓고 그들을 보살필 생각』이라고 말했다. 스님들은 선암사 수행에 들어가면서 모두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정말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것일까. 낙엽깔린 선암사의 고즈넉한 산길을 걸어 그들은 사람 속 깊숙이 되돌아갔다.
순천=김범수기자
bskim@hk.co.kr
■선암사는 조계종 다음으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太古宗)의 본산. 순천 조계산 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마주하고 있다. 전란이나 화재를 만나 불타고 다시 짓기를 거듭한 이 절은 1824년 재건축 때 60여 동의 건물을 가진 대가람이었지만 한국전쟁 동안 많은 건물이 없어지고 지금은 20여 채가 남아있다. 선암사는 한 번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절로 오르는 길이 호젓하고 절집들이 이른바 불사(佛事)라는 이름으로 뜯어 고치거나, 새로 칠하지 않아 옛스런 멋을 그대로 간직한 덕분이다.
■경내 명물 '解憂所'
선암사 오가는 사람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명소는 해우소(解憂所), 절간 화장실이다.
선암사 해우소는 전국 절 중에서 가장 크다. 입구부터 직선방향으로 4칸, 마지막 1칸에서 좌우로 1칸씩 펼쳐져 바깥에서 보면 맞배지붕의 건물 두개가 T자형으로 만나는 모습이다. 전체 넓이는 18.9평.
일 보는 곳은 남녀가 각각 8칸. 문제는 칸마다 문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쓱 지나가면서 사람 있나 없나 살펴보면 그만이다. 선암사 혜우스님은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르는 사람 만나서 한 밥상에서 밥 먹는 것이 그리 쑥스럽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면 될 일이지요』하고 말했다. 명쾌한 답변.
또 하나 문제는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시원하게 일 보기가 어렵다는 점. 경사진 땅에 지어진 해우소 높이가 3층 건물 정도여서 앉은 자리서 아래까지 깊이가 3㎙를 넘는다. 아래를 보면 아득하다. 2㎝ 두께의 송판 위에 몸무게를 의지하고 앉아있으면, 득도한 사람 아니면 어떻게 근심걱정을 풀 것인가. 해우도 고행이련가.
선암사는 쌓인 인분에 가끔씩 풀을 덮고 발효제를 뿌려 잘 썩힌 뒤 겨울 마른 날을 골라 1년에 한 번 청소한다. 인분은 좋은 퇴비가 되어 절에서 가꾸는 논·밭에 쓰인다. 통풍이 잘 돼 도시 재래식 화장실 같은 냄새도 풍기지 않고 환경도 해치지 않는 뒷간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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