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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를린장벽 붕괴 10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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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를린장벽 붕괴 10년의 교훈

입력
199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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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한 학술행사에서 연설할 때 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자서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종종 인용한다. 그는 이 책에서 독일 통일전 베를린을 방문, 『베를린장벽 앞에 서서 조국 통일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는데 내 여생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고 적고있다. 이 말은 베를린을 비정하게 갈라 놓았던 이 흉물스러운 건조물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정서적 파급효과를 극명하게 드러낸 표현이기에 매우 인상적이다.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10주년이 되는 9일 우리는 왜 베를린장벽이 그처럼 중요한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린장벽은 동독국민의 평화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그리고 그것은 동독의 민주화에 매우 중요한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장벽이 없어진 지 채 몇달 되지 않아 동독인들은 최초의 자유선거를 치렀고 민족단합과 통일을 옹호하는 정치단체에 찬성표를 던졌다. 아울러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폴란드와 헝가리, 소련에서 전개된 상황으로 인해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바르샤바조약체제의 종말, 즉 냉전의 종식을 의미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유럽이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흥분과 환희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동독인들이 통일에 대해 건 희망, 서독인들과 같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바로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실망은 환멸과 좌절로 이어졌다. 구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서독의 두배인 20%에 달했다.

많은 동독인들에게 헬무트 콜 전수상이 약속한 번영의 땅은 결코 현실화하지 않았다. 구 동독지역 선거에서 구 공산당이 거둔 놀라운 승리를 평가할 때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동·서독할 것 없이 독일인 대다수는 통일국가에서 살고 있는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 여론조사 결과 10%정도만이 공산주의체제로의 복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수년간 독일을 방문했던 한국인 학자 행정가 언론인 정치인들의 수는 수백명에 달한다. 나우만재단도 학술회의와 세미나, 정보 수집을 위한 독일 방문을 많이 후원해 왔다. 이러한 행사들은 하나같이 한반도 통일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한 자리이다. 이런 자리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마도 정치 및 경제 개발과 조정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독일인들은 통일후 법적, 물질적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적, 사회심리적 측면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분단된 조국의 다른 반쪽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그리고 나름대로의 가치체계와 전통, 성과를 간직한 그룹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껴안으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독일인으로 보기에 한국인들은 분단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직까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같다. 가령 남한내 북한방송 허가를 둘러싼 논의를 들 수 있다. 대다수의 남한국민들은 북한방송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반면 독일에서는 통일이 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동서독 모두가 제한없이 서로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두번째 예로 금강산 관광문제를 들 수 있다. 이미 10만이 넘는 남한주민이 금강산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도 북한주민 개인과의 접촉은 불가능했다. 서로에 대한 마음속의 장벽, 즉 적개심을 극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주민 개개인간의 접촉이다.

물론 금강산 관광과 북한방송의 부분적 허용만 해도 한반도 문제에서 크나큰 진전이지만 한반도 통일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생각하면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로날드 마이나르두스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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