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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움직인 책](29)칼 만하임'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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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움직인 책](29)칼 만하임'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입력
199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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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이념 관념형태 또는 의식의 형태로 번역되지만 자연 인간 사회 총체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의식의 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20세기 이전까지 이데올로기는 정치경제학 영역에 국한돼 있었다.그러나 20세기 들어 칼 만하임(1893-1947)은 지식사회학을 정립한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1929)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허점을 낱낱이 들추어냈다. 그는 마르크스 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도 아직 그 이데올로기가 의존할 수 있는 기반을 의식하여 상대화하지 못했으므로 특수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자신의 입장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이데올로기 개념의 보편적 파악을 지향한 것이다.

그는 지식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구명하지 않고는 도저히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사유방식이 존재한다」 는 것을 밝혀내기 위함이라고 명시했다. 개인의 사유를 어디까지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상황과의 구체적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상대주의를 초월한 「상관(相關)주의」로 명명된 그의 방법론은 미국으로 건너가 머턴의 경험주의적 지식사회학의 바탕이 된다.

당연히 이데올로기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가 제기된다. 그는 이데올로기란 역사적 동력의 추이를 관망하거나 고찰하는 데 도구로 쓰였던 몰가치적 개념인데 어느덧 가치평가적이며 인식론적인 단계를 거쳐 종국에는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가치판단의 단계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종의 사상적 파악능력의 경직성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상황의 특수성과 형이상학적 제(諸)전제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유란 주체와 객체사이의 관게에 다른 추상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존재피구속성(存在被拘束性)의 개념은 결국 마르크스 식의 이데올로기가 제공한 일종의 유토피아가 실상 인간의 초월적 자아의 지향성인 유토피아와는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 하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대니얼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 등의 저술은 모두 만하임적 지식사회학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유태계 헝가리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만하임은 부다페스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베를린대학의 강사였던 짐멜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1차대전이 시작되자 헝가리로 귀국, 루카치 발라즈 등과 함께 헝가리 혁명 운동에 참가했다. 반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 독일로 망명,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재직했다.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는 이 대학 강사시절 저술한 책으로 출간 직후 사회학 교수가 됐다. 1933년 히틀러정권이 들어서자 영국으로 망명했고, 2차대전 후에는 유네스코 활동에 참가했다.

그의 저술은 지식사회학의 태두로서의 그의 선언일 뿐 아니라 현대학, 대중사회론의 기초 텍스트로서도 의미가 크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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