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을 지향한 고용평등법 제정과 가족법 개정87년 12월에 제정돼 98년 4월에 시행된 남녀고용평등법 (이하 고평법으로 줄임)은, 이미 상당한 기세로 약진하고 있던 여성의 사회진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변하는 세계 및 국내의 상황과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결실을 맺은 이 법은,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89년, 95년, 99년)의 개정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관련 법령과 제도를 만드는 촉매 구실을 하여, 명실공히 남녀 평등사회를 이루어가는 주춧돌을 놓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고평법 제정 및 개정의 배경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는 우리사회의 중대한 두 축의 과제였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과 남녀평등의 요구는 그러한 과제의 단적인 표출인 것이었다. 다른 사회적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요구가 정치적으로 수렴된 것은 80년대 후반 사회 전반의 민주화 과정에서였다. 산업화와 더불어 여성노동자의 수가 크게 증가했고, 이에따라 여성차별 시정에 대한 요구도 증폭됐다.
고평법의 제정에는 국제적인 상황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79년 유엔이 채택한 여성차별철폐협약에 우리나라는 80년에 서명하고 84년에 비준했다. 이 여성차별 철폐협약은 남녀고용평등을 위한 입법이 의무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도 이 협약에 비준한 후, 우리보다 2년 앞서 85년에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을 제정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고평법은 구체적인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주목하고, 여성운동과 근로자, 기업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외국의 사례를 참고로 하면서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
◆육아휴직 및 직장보육의 기반
48년에 제정된 헌법과 53년의 근로기준법에 보장되어 있는 남녀고용평등원칙을 법과 행정의 규제를 통해 실체로 만들며, 여성고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인 것이 고평법의 기본 의미다. 여러 내용 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는 남녀고용평등을 위해 고평법이 대표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첫째는 육아휴직 및 직장보육을 위한 제도의 기반을 놓은 것이다. 여성 취업의 가장 큰 어려움이 출산과 육아인 점을 생각할 때, 고평법이 처음으로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하고 수유, 탁아 등 육아에 필요한 보육시설을 사업주에게 의무로 마련하도록 규정한 것은 획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몇 차례 개정과정에서 이 제도는 점차 강화돼, 이 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사업주에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여성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육아휴직을 적용하는 한편 휴직 기간을 근속기간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등 사항이 첨가됐다.
고평법의 또다른 주요 내용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도입한 것이다. 89년 제1차 개정때 고평법은 「잠정적으로 특정 성의 근로자를 우대하는 조치를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어, 남녀평등을 효과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당분간 여성을 우대하는 제도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96년부터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실시됐으며, 공기업에서 여성에게 가산점을 부여토록 하는 제도도 실시됐다. 이밖에 여성에 대한 직업훈련이 실시됐고, 결혼·출산 등으로 퇴직한 여성을 5년 이내 재고용한 사업주를 지원하는 고용보험법도 제정됐다.
직장내 성희롱 방지를 위한 규정을 마련한 것도 고평법의 중요한 공헌이다. 99년 제3차 개정시 고평법은 직장내 성희롱을 개념 규정하고 성희롱 예방교육 가해자에 대한 조치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등을 의무로 규정했다. 이것은 96년에 제정한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처음 명시한 것을 고평법에서 실체로 드러낸 것이다.
◆다른 여성관련법 제정 잇따라
이렇게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가운데 받는 불이익을 시정하고 남녀평등사회를 이루어가는 기틀을 만든 고평법은 많은 관련 입법을 제정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남녀고용평등을 위한 관련 법으로 여성발전기본법(96년) 고용정책기본법(93년) 직업안정법(93년)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98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99년) 등이 제정됐으며, 그밖에 여성의 고용을 촉진하는 관련 법으로 고용보험법(95년) 영유아보육법(91년)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를 다룬 인권법안(99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94년) 등이 고평법 이후 광범위하게 남녀차별 시정을 위해 만들어졌다.
70년대 이후 여성단체를 망라하여 전선을 형성한 가족법 개정 운동도 여성을 위한 제반 법률의 제·개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발전됐다고 볼 수있다. 이밖에 세법, 국적법 등도 남녀불평등 조항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여성관련 법의 가능성과 한계
새로운 법률의 제정과 함께 80년대 후반 이후 이루어진 여성을 위한 제반 정책변화의 시발을 이룬 남녀고용평등법은 여성취업자 수의 증대, 남녀임금격차의 감소 등 실제적 성과도 달성했다. 이러한 직·간접 성과는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물론 주요 규정들을 더 명확히 해야 하는 점,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규정을 실질화해야 하는 점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 필자 **
■정진성(鄭鎭星·46)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53년 충남 공주 출생 76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84년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 연구논문 「여성억압기제의 전통과 근대」(창작과 비평 94호, 96년) 「정신대 피해와 인권운동」(사상 96년 겨울호)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만남」(이창순과 공동 편역, 한울, 97년) 「페미니즘의 발전과 우리사회에서의 수용」(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논총 98-7, 한국 정치 사회 개혁의 이념적 기초, 98년) 「억압된 여성의 주체형성과 군위안부 동원」(사회와 역사 제54집, 문학과 지성사, 98년) 「한국 가부장제의 변화와 여성의 주체형성」(김일철 등 지음, 한국사회의 구조론적 이해, 아르케 대우학술총서 441, 99년)
◆연구자료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10년의 성과와 과제」(김엘림 지음, 한국여성개발원, 99년)
「법여성학 강의」(이은영 지음, 박영사, 99년)
「새 여성학 강의」(한국여성연구소, 동녘, 99년)
「각국의 육아휴직제도 비교와 우리나라제도의 개선방향」(장성자 등 지음, 한국여성개발원, 93년)
「고용상의 성차별과 고평법상의 분쟁처리제도 개선방안」(윤성천 지음, 한국노동연구원, 96년)
「여성관련 법률의 입법과정 및 향후 과제」(여성특별위원회, 98년)
「98 여성백서」(여성특별위원회, 98년)
「여성과 취업」(노동부, 98년)
「평등」(한국여성민우회, 99년)
■빈민촌 여성가구주의 그늘
1900년대 초 여성교육기관이 생기고 그곳에서 이른바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을 배출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본격으로 이루어졌다. 정신여학교의 터전을 닦은 신마리아, 최초의 여성 의사며 여성 미국유학생 박 에스더, 최초의 여성 개업의며 이광수의 부인인 허영숙, 첫 여성비행사 박경원. 배우 이월화, 소프라노 윤심덕, 약사 차순석, 기자 최은희 등은 모두 그 분야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여성의 사회참여는 해방이 되고 60년대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나라가 고속성장의 시동을 건 뒤다. 70년대 중화학 공업화 단계로 산업구조가 서서히 바뀌면서 여성들이 대거 2, 3차 산업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물론 장시간의 저임금 노동이었다.
한국여성개발원이 5년마다 실시하는 「여성의 취업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 일하겠다』 는 여성이 92년 39.8%에서 97년 54.4%로 크게 늘어났다. 2000년을 앞둔 한국 여성들의 직업의식은 이제 단기 취업이 아니라 평생직장 쪽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 노동의 모습은 크게 문제삼지 않아도 될 시점이 온 것일까?
서울 구로구 독산동에 영아보육시설을 두고 선교활동을 펴는 새터교회의 신미경 전도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심의 가정에서 남성 가장이 그 역할을 못하거나 안했을 경우 생계의 책임은 여성에게 주어진다. 그 여성들이 능력이 많은 슈퍼우먼이거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모성애로 뭉쳐있다면 그런 여성이 가구주로 있는 가정과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빈민촌에 사는 많은 여성 가구주들은 극히 평범한 여성들일 뿐이다. 가난한 여성 가구주는 대개 장기간 실업상태에 빠진 남성 배우자와 살거나, 불성실한 일용직 남성 배우자와 사는 여성들이다. 남편이 있다해도 혼자 사는 여성가구주들보다 나은 상황에 있지 않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집안의 가구주 역할을 해야 하지만 법으로는 남성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삶이 무척 어렵다.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임금이 낮은 직종이나 사회보장을 받을 수 없는 데서 일하기 때문에 하루의 먹거리를 겨우 충당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일이 생기지않는 한 삶의 질을 높이는 단계는 꿈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연히 이들은 가난한 지역에서 더 가난한 층을 형성하면서 살게 된다. 가난한 지역의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 불성실한 남성과 그들의 자녀에게는 빈곤의 악순환이 보장된다』
신 전도사는 『폭넓고 대대적인 지원없이 이들은 가난의 하층부를 벗어날 수 없다』며 『여기에서 아이들, 아이들의 어머니들, 아버지들을 보면서 이 가정들을 지키고 아버지들을 도와주고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여성의 존재와 힘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산업화, 도시화를 통해 가족구조가 급속히 변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도 늘고 있기는 하다. 그 가운데 사망하는 남성 가구주나 이혼이 증가하고 미혼 여성이 늘어나면서 여성 가구주는 증가 추세라는 점을 눈여겨 볼 만 하다. 여성 가구주의 가구 비율은 75년 12.8%에서 85년 15.7%, 95년 16.8%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신 전도사는 『다른 말로 한다면 빈곤층 여성이 증가하는, 이른바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