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에 헌신하면 삼대(三代)가 망한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그 대가로 우리 후손이 물려받은 것은 가난뿐입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도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데…』독립운동에 공헌했던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정부의 무관심에 항의, 선조들에게 추서된 훈장을 집단 반납했다.
경남 하동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투옥된 손기혁(孫琪赫)선생의 손자인 손수광(孫守光·51)회장 등 애국순열유족회원 7명은 1일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훈장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5일 서울 중구 신당동 유족회 사무실로 2명의 회원이 추가로 훈장을 반납해왔고, 나머지 회원 220여명도 정부의 가시적인 처우개선 방안이 잊지 않으면 훈장을 일괄 반납할 계획이다.
독립운동가의 손자인 이들이 「훈장반납」이라는 극단적 행동에 나선 것은 자의적인 관련법조항으로 연금혜택도 받지못한 채 허울뿐인 명예만 안고 생활고에 지쳐왔기 때문. 73년 비상각의에서 개정된 「독립유공자 처우에 관한 법률」은 8·15광복 이후에 사망한 애국지사의 경우 유족의 연금수혜 대상자를 손자대(代)에서 자녀대(代)로 축소, 수혜범위를 크게 줄였다.
손회장은 7일 『독립운동이 꼭 목숨을 잃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고문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광복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숨진 애국지사들도 상당수인데 단지 일제치하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손자대에 보상을 끊은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유족들이 법개정을 위해 백방으로 뛴 지도 올해로 5년째. 특히 96년엔 국회의원 246명의 서명을 받아 사망시기와 상관없이 독립유공자의 삼대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입법청원을 제출, 의원입법으로 개정법안까지 마련됐지만 3년째 국회 정무위에 계류돼있다.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해 무장항일단체인 신민부에서 활약하다 옥고를 치른 남상열(南相烈)의사의 손자 기 택(基 宅·62)씨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인 빛바랜 훈장마저 반납하는 자손들의 고충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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