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선비 강희안(1417-1465)은 꽃과 나무를 사랑하여 손수 가꾸며 담백한 생활을 즐겼다. 문인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그린 선비화가로 알려진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이면서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렸으나 자신의 흔적이 세상에 남겨지는 것을 꺼려하여 전해지는 것이 별로 없다.그가 화초를 기르며 알게 된 화초의 특성과 재배법 등을 자세히 기록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다. 17종의 꽃과 나무, 괴석에 대해 설명하고 덧붙여 꽃나무를 기를 때 주의할 점과 꽃과 나무 기르는 마음을 쓰고 있다. 중국의 옛 책 기록을 폭넓게 참고하고 인용한 다음 실제로 해보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자세히 설명했다. 책에 소개된 것은 소나무 향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 난초 서향화 연꽃 석류꽃 치자꽃 사계화 동백꽃 나무백일홍 왜철쭉 귤나무 석창포와 괴석이다. 사계화는 요새는 보기 힘들어진 우리나라 토종 장미다.
그는 『화훼를 재배하는 것은 키우는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덕을 기르기 위함일 뿐』이라고 썼다. 화초 기르는 데 마음을 뺏겨 미혹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구하여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뜻을 잃어버림이 있겠습니까』
강희안의 원예법은 한마디로 양생법(養生法)이다. 즉 보잘것 없는 풀 한 포기라도 그 풀의 본성을 살펴 그 방법대로 키우면 자연스레 꽃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양화소록」은 단순히 원예기술을 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꽃과 나무의 품격을 말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천하를 다스리는 뜻을 살피며 자연과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지혜를 넌즈시 전한다.
이 책은 옛 선비의 뜰과 그것을 가꾸던 오롯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반듯하고 기품 넘치는 글에서 맑은 향기가 느껴진다. 강희안의 연꽃 가꾸기를 들여다보자. 한양 땅값이 금값이니 연못을 파지는 못하겠고 주둥이가 넓은 큰 옹기 두 개에 물을 담아 분홍색과 흰색 연꽃을 가꾸는 얘기가 나온다. 부들 개구리밥 같은 수초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도 그 안에 넣는다. 『공무의 한가한 틈에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향기 진한 연꽃과 그림자 뒤척이는 줄이나 부들을 대하거나 작은 물고기가 개구리밥과 수초 사이로 뛰노는 광경을 만날 때마다 옷깃을 풀어헤치고 거닐거나 노래를 읊조리면서 노닌다면, 몸은 명예의 굴레에 묶여 있지만 마음은 세상사에서 벗어나 노닐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은 젊은 한학자 서윤희 이경록이 했다. 두 사람은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강희안의 글 뒤에 「야생화 박사」로 알려진 식물학자 김태정의 글과 사진으로 각 식물에 대한 설명을 넣었고 책 맨 뒤에 원서 영인본도 붙어있다. 강희안의 품격 높은 글도 글이려니와 성실한 번역, 보기 좋고 아름다운 편집과 장정 때문에 더욱 탐이 나는 책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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