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있지 않아 곧 고3 수험생들은 대학입학 수능시험을 친다. 한국에서는 입시의 성공을 기원하는 뜻에서 하느님이나 부처님,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마리스타회 수사로 절두산 순교 성지 근처에 살고 있는 나는 입시철이 다가오면 이 성지를 찾는 가톨릭신자 부모들을 많이 본다. 한국의 부모들은 뭔가 「요청」하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도는 내가 하느님 혹은 신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또 그와 함께 있는 것, 즉 「그」와의 만남인 것이다. 많은 경우 무언가를 청할 요량으로 혹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하느님에게 다가간다. 소원을 빌어 이것이 이루어도록 하는 그런 기도보다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고 그 과정 자체가 결실이 되도록 하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해도 항상 응답이 있거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옛날 이야기 하나. 신앙심이 깊은 가톨릭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조회시간에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선생님들에게 했다. 교장 선생님이 교실복도를 걷던 중 우연히 한 여학생을 만났다.
자기도 모르게 『너는 매일의 만남을 어떻게 해나가니』라고 말한 선생님은 꼬마의 『아주 좋아요』라는 말에 놀랐다.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니』라는 질문에 『전혀 안그래요.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둘이니까요. 그분과 저 말이예요』라는 깜찍한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 여학생이 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지만 매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부터 나는 부모들이 뭔가를 간청하기보다는 나중에 우리 삶 속에서 그 결실이 영글게 되는 그런 내용의 기도를 해보았으면 한다. 절대자를 만나는 것은 서로 마주보면서 상대방이 있음을 즐기고 대화를 나누는 사랑하는 두 남녀의 만남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돌아오는 입시에서 성공하길 바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에드아르도 라미레스 라미레스·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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