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집오기 전만 해도 농촌에 건조기가 없던 시절이라 농사짓는 것보다 땀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말리는 게 더 큰 걱정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이 먹고 살 농사를 다 지어놓고 갑자기 세상을 뜬 그해에도 늦가을까지 가을비가 촉촉히 내려 가을걷이가 늦어졌다.그러던 어느날 나와 동생들이 볏단을 논바닥에서 논두렁이까지 끌어다가 어지간히 말린 뒤 다시 집으로 가져오려는 참인데 갑자기 하늘이 새카맣게 변하더니 말린 볏단에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지은 농사를 망치는 것 같은 조바심에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나는 등불을 밝혀 아버지께서 고이 잠든 산밑의 세절이들녘으로 나가 논두렁에서 말리던 볏단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어머니께서 세단, 두단, 마지막 한단을 차례대로 포개나가자 볏단은 단단히, 그리고 함초롬히 묶여 어지간한 비가 와도 한방울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오랜 농사 경험에서 저절로 터득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처럼 되지 않았다. 볏단을 묶어도 엉성하기 이를데 없었고, 그나마 묶어놓은 볏단도 쓰러뜨리기 일쑤였다. 나의 서툰 솜씨에 『여자가 손끝이 야물지 못하다』는 어머니의 생벼락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이 훤히 밝도록 볏단을 묶으면서 『못난 딸을 도시로 시집 보내야 할텐데』하시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같이 가을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는 해에는 그날의 어머니가 더욱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머니 소원대로 도시로 시집와 넉넉치 못하게 살고 있지만 볏단을 추스리다가 손목이 퉁퉁붓고 벼 등걸에 손등을 찔려 피가 나는 모진 고생에도 아버지 대신 억센 농사를 지어 어린 자녀들을 키워 결혼시킨 어머니는 내가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늘 표상이 돼왔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오세영·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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