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장소영어떤 정해진 방법과 규칙으로 행해지는 게임이나 경기의 끝에서 우리는 항상 승자의 미소와 패배의 비소를 보게된다. 만약 우리의 인생을 이러한 수많은 게임의 연결체로 비유해 본다면 우리의 인생 속에 수많은 승리자들과 그에 따른 패배자들이 있음을 좀더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 승리자들의 웃음 뒤에는 결코 많은 사람들의 축하가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승리」라는 말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승자들은 그의 승리를 통해 사회에 반드시 좋은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식민지를 정복하고 기뻐하는 장교의 웃음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시련이 따를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승리를 사는 지도자의 뒤에서 정직한 시민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과 위화감은 증대될 것이다. 또한 이기고도 떳떳지 못한 사람들과 이에 반해 졌지만 편안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승리」라는 말이 함부로 오용되어져서는 안됨을 깨달을 수 있다. 일부만을 위하고 여러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승리라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승리는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결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열매를 얻어내는 과정과 동기에 있음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전투조종사』라는 글 속에서 승리는 종자의 힘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며 광활한 땅에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그것은 이미 승리자가 된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목표를 굳게 정하고 그것을 「승리」라는 이름으로 얻어내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승리의 씨앗이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싹이 자라서 열매로 맺어지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동안의 노력과 희생은 그에게 진정한 웃음과 보람 그리고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만약 아쉽게 그 싹이 열매로 맺어지지 못했다고 해도 그 과정 속에서 또다른 싹을 틔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많은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패배 속의 승리라는 말이 아마도 이 경우에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승리는 올바른 동기와 그것을 이루어내기까지의 노력의 세월이 수반되어야 하며 그 세월의 끝에서만이 진정한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음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 김수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승리는 평면적인 것들, 즉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승리가 오랜시간이 지나 다시 패배가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승리와 그를 위해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정말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 4.19혁명을 예로 들어보자. 4.19혁명은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다 쓰러져간 정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또 군사정권에 의해 탄압당하고 「의거」로써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 「의거」에서 「혁명」으로 승격되었고, 그 후 많은 민주화 항쟁의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처럼 진정한 승리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를 좁게 개인의 삶에서 보자면 몇년 전의 한보 사건을 들 수 있겠다. 모든 부정과 비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결국 그 승리가 패배의 결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실패의 상태가 성공의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고 성공의 상태가 실패의 방향으로 변해갈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와 실패의 결과는 시간이 지난 후에 평가받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 인류는 공통된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인류가 다함께 지향해야 할 공통된 가치, 그것을 곧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선조들은 각자 성공을 위한 삶을 살아오면서 오늘날의 사회를 만들어 왔다.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나아가 더 발전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정한 성공의 의미와 궁극적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까지 알아보았다. 우리는 승리와 패배는 오랜 시간이 평가해 준다는 것을 배웠으며 따라서 모두 그 승리의 결과를 맞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로서 인류는 귀중한 가치를 실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수.. 고종완
「삼일천하」라는 말이 있다. 갑신정변 당시에 급진 개혁파가 3일동안 정권을 잡았던 일이다. 이들의 계획은 비록 수포로 돌아갔지만 현재 우리들은 이들을 단순히 역사의 실패자로 보지 않는다. 또 삼일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 운동이 일제에 의해 저지되었지만 이러한 실패가 가치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대적 상황이 좋지 않다면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신분의 제약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썩혀버린 수많은 일화들에서 시대적 상황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갑신정변이나 독립운동의 경우처럼 일시적인 패배를 승리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역사의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보편적, 정신적 가치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가치의 추구를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상황성을 제외하고 사회적이고 보편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판단하여야만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 이런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그 시대의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역사에 의해 승리라고 평가를 받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암 박지원의 문학의 경우 패관 기서를 따랐다고 하여 조선 시대 당시에는 괄시를 받았다. 그러나 독창성, 비판 의식의 가치를 포함했기 때문에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그 당시 인정을 받았던 한문학보다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해본 바와 같이 진정한 승리는 일시적인 승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즉 역사의 평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론 일시적인 승리와 실패에 만족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사회적, 정신적, 보
편적 가치를 추구하여 진정한 승리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강평..이태동 서강대 교수
수험생들이 논술문제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주어진 지시문을 정확히 읽고, 그 속에 담겨있는 언외(言外)의 뜻을 남다른 통찰력을 통해서 밝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통찰력은 앞선 수 차례의 강평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던 바와 같이, 지속적인 독서와 같은 지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통찰력은 이번 주 논술의 주제가 되고 있는 생텍쥐페리의 『전투조종사』에서 논의되고 있는 승리와 패배의 문제를 밝히는 데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 승리는 승리이고 패배는 패배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경험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경우에 따라 그것을 역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승리와 실패의 의미를 순간적인 상황에서 평면적으로만 읽을 때는 그것 자체가 지닌 의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읽거나 아이러닉한 문맥에서 읽을 때에는 그것이 지닌 의미가 역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끝없는 싸움의 연속인 역사의 길 위에서 어떤 사람이 승리를 했을 때, 지나치게 흥분을 한다든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들떠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의 승리는 영원한 것이 될 수 없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패배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흥분시키기만 하는 승리는 인간을 타락시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자기자신을 패배로 이끌기 때문이다. 또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인간을 너무나 많이 학살했을 경우에는 비록 그것이 겉으로 볼 때에는 승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도 결국은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패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패배가 비극의 경우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각성하게 했을 때에는 그것이 곧 승리가 될 수가 있다. 또 패배자가 순간적인 패배를 승리를 위한 작전상의 후퇴로 활용할 때 그 속에는 승리의 씨앗이 담겨 있다. 이것은 값진 희생이 실패가 아니라, 승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승리와 패배는 긴 안목의 역사적 시간 속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전투조종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삶은 상태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방향에 의해서 표현되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는 유일한 승리는 종자의 힘 속에서 자라나는 그러한 승리이다. 광활한 땅에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그것은 승리자가 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밀을 통해서 씨앗의 승리를 보려면 세월이 지나가야만 한다」 앙드레 모루아가 이 텍스트에서 「타인을 위해서 혹은 자신을 위해서 패배의 책임을 수락하는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위에서 살펴본 역사적인 문맥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최우수작으로 뽑은 장소영(대일외고)의 글은 탁월한 지적 통찰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글에서 승리와 실패에 대한 개념을 일시적인 것이 아닌 연속적인 과정의 문맥 속에서 읽어 내려는 노력을 보인 것은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 이 글은 승리와 실패를 규정하는 기준을 단순히 결과로 보지 않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동기로서 파악해 돋보였다. 글 전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통일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말을 사용할 때, 인용부호를 표시하지 않는 등의 실수를 범한 것이나 「패배의 비소」와 같은 생경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옥의 티」로 작용했다.
우수 1로 뽑은 김수진(명덕외고)의 글은 승리과 패배를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공통된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 참신하고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와 패배의 기준을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파악하려 노력했던 부분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론부분이 필요이상으로 교훈적으로 흘렀던 것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우수 2로 뽑은 고종완(명덕외고)의 글 역시 승리와 패배를 평면적으로 보지 않고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파악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특히, 그가 승리와 패배를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파악하는 기준을 시대적인 상황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신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도입부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어진 텍스트의 내용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과 결론부분이 교훈적으로 흐른 것이 흠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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