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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에세이]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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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에세이] 언론개혁

입력
1999.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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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귀가 따갑다. 한 언론사 사장이 구속되더니 이어서 언론에 종사하는 몇몇 사람들의 추태가 드러나면서 모든 언론이 지탄을 받고 있다. 언론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언론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언론사의 소유구조와 지배체제가 문제라 하고, 정치권력뿐 아니라 금권과의 유착이 병폐라 하고, 언론윤리의 추락이 큰 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고질은 공정하지 못한 보도에 귀결된다. 이런 구조적 모순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공정보도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기되어 온 언론개혁의 여러 제도적 모순점들이 개선되기만 하면 언론은 본연의기능을 발휘하고 보도는 저절로 공정해질 것인가.

언론개혁은 여기서 주춤하게 된다.

신문의 경우, 우리나라 신문들은 모두 상업지들이다. 아무리 다른 외적 제약요인들이 다 개혁되고 환경이 다 정비되었다고 하더라도 상업지로서의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지금 특히 우리 신문들의 큰 폐단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 선정주의다. 언론자유의 억압으로 언론이 불신받던 독재정권시대에 독자의 환심을 사려고 시작된 것이 선정주의인데, 언론자유가 신장되면서 선정의 자유가 덩달아 커졌다. 이 선정주의는 권력과 유착해서도 아니요 신문사의 경영이 족벌체제라서도 아니다. 상업지이기 때문이다.

상업주의 신문은 독자의 수가 척도요 발행부수가 권위의 크기다. 부수 경쟁을 하다보면 대중의 호기심을 선동하고 독자의 악취미에 영합하게 마련이다. 정확성보다는 자극성이 우선한다. 공정보도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불신이라고들 한다. 언론개혁의 외침도 이 불신을 앞세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언론으로부터 이반하여 멀리 달아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런 기미가 없다. 신문독자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는다. 언론에 대한 불신 속의 맹신이다. 언론의 선정에 길들여진 것이다.

모든 신문이 상업적인 대중지인 한, 대중지가 독자의 머릿수에만 연연하는 한, 독자의 머릿수가 신문권위의 질량(質量)인 한,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개혁은 무의미하다. 상업지더러 독자를 무시하라고 강요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언론개혁은 영영 불가능한 것인가.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표준신문의 창출이다. 이른바 권위지의 등장이다.

표준신문은 여론의 기준이 되는 신문이요 언론자세의 규준(規準)이 되는 신문이다. 그러자면 비상업적이고 비영리적이라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에 아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아첨하지 않을 수 있다. 표준신문은 정권에 대한 용기뿐 아니라 독자에 대한 용기도 있는 신문이다. 정권이나 독자뿐 아니라 광고주 등 모든 압력세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일간지 이름을 따서 「독립신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독립신문은 자사(自社)이익이 곧 국민의 이익인 신문이다. 언론의 성역에서 스스로 해방되어 경영이 투명한 신문이다. 권위지로서의 권위 외에는 어떤 권위주의도 배격하고,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로 폭력화하지 않고 정론(正論)을 주도하는 신문이다. 발행부수를 경쟁하지 않으나 꼭 읽어야 할 사람은 반드시 읽는 신문이다.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언론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부자유 외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누구 앞에서도 떳떳한 신문이다.

독립신문은 독자로부터 독립해야 하므로 독자를 잃을 위험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여론주도층의 지지를 받을 때 외롭지 않다. 진실로 신뢰받는 언론이 될 때 비상업지는 언젠가 채산성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표준신문이 탄생하면 기존의 상업지들은 비교되는 잣대가 있으므로 함부로 각자 「최고의 신문」으로 자처하지 못한다. 표준신문의 표준을 따르든지 아니면 스스로 대중지를 표방하고 전락하든지 할 수밖에 없다. 대중지를 자처하는 대중지는 있어도 과히 걱정될 것 없다.

이렇게 정도(正道)의 신문이 국민적 열망으로 하나라도 탄생하면 언론개혁은 절로 되어 갈 것이다.

/김성우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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