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새 수도 베를린에 들어설 미국 대사관 부지를 둘러싸고 양국이 신경질적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대사관 건물 주변에 설치될 안전지대(Buffer Zone)의 크기때문에 불거진 갈등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냉전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한다」며 미국의 오만을 성토하는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미국은 당초 베를린의 중심지인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에 대사관 부지를 잡고 올 가을에 착공할 계획이었다. 이곳은 2차대전 전에 미국의 공관이 자리했던 곳으로 냉전 승리의 상징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난해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대사관 테러를 당한 바 있는 미국은 건물 주변에 30㎙의 안전지대를 요구했지만 베를린시 당국은 22㎙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요구대로라면 대사관 건물이 인근의 브란덴부르크문과 제국의회 등과 일렬로 배치되지 않는데다 도로를 잠식하고 경관을 해친다는 것이 베를린시의 입장. 그러나 미국의 속셈은 도로 건너편의 티어가르텐 공원까지 안전지대로 편입, 결과적으로 브란덴부르크문과 파리광장 주변의 교통흐름을 엉망으로 만들려는데 있다는 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파문이 번지고 있다. 결국 건물착공은 기한없이 연기됐다.
독일의 고집스런 반대에는 이유가 있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6만명 가까운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이 독일에 대해 지속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한다는 것이다. 최근 뮌헨 인근의 배드 아일블링에 위치한 미국의 레이더 통신기지를 폐쇄하라는 목소리가 불거지는 등의 반미 움직임도 이번의 「대사관 논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에베르하트 디프겐 베를린 시장은 『미국이 독일을 「핫바지 나라」로 취급하고 있다』는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수석외교 보좌관인 미하엘 쉬타이너도 『미국은 슈퍼파워를 균형되게 사용할때 이득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점잖게 충고했다.
그러나 존 콘블럼 주독일 미국대사는 『조용한 해결을 기대했지만 「오만한 미국이 베를린의 관문을 틀어막으려 한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는 등 앉아서 당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전후 엄청난 병력을 파견해 동독과 대치한 베를린을 지켜준 우방의 고마움을 잊은 독일이, 특히 디프겐 시장같은 사람의 입을 통해 타협가능한 사소한 문제에 대해 고집을 부린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주독 미군 부대가 독일기업과의 보급품 계약을 파기할 계획을 세우자 독일이 발끈했다. 올초 뮌헨에서 러시아 탈출자의 안가(安家)를 운영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철수한 것과 관련, 독일 언론에 양국의 비밀협상설이 누설되자 이번에는 미국이 질색하는 등 양국간의 감정이 여전히 심상치않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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