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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크라테스의 대우생각 - 전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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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크라테스의 대우생각 - 전성인

입력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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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면서 죽기 전에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일전에 이웃집에서 빌린 닭 한 마리를 못 갚게 되었으니 대신 좀 갚아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죽게 된 마당이라 안 갚아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빚은 빚이고 따라서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노철학자의 신조가 선명히 드러나는 일화다.그러나 그로부터 수천년이 흐른 지금 이 땅에선 소크라테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닭 한 마리가 아니라 몇십 조원의 돈이 행방불명되었는 데도 이 돈을 누가 갚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대우그룹의 천문학적인 손실규모가 밝혀지고, 관련 금융기관의 손실 역시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은 전혀 충격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주식시장은 연일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왜 그럴까? 정말 일부에서 말하듯이 대우의 충격은 이미 옛날 옛적에 주가에 다 반영되었고, 최근 손실규모가 밝혀지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탄탄한 상승여건이 마련된 것일까? 현대의 경제현상이 너무나 복잡다양해서 수천년전 「원시시대」에 살았던 노철학자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빚은 빚이고 어떻게 해서든 갚아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신조는 현대 사회에서도 계속 유효한 경제원칙이다. 그리고 이런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금융개혁의 중요한 측면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이해하지 못했을 현재 우리 경제의 모습은 분명히 커다란 문제덩어리이다.

이런 필자의 주장에 대해 혹자는 즉각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아니 주식시장이 달아오르고, 자금시장도 멀쩡하고, 뱅크론도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공연한 트집잡기가 아닌가.

그러나 금융시장이 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은 우리 경제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문제거리라는 것의 역설적인 반증에 불과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대우가 침몰하면서 남긴 것은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이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돈을 받기로 된 채권자들이 돈을 못받게 되어 큰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일부 자금력이 약한 채권자들은 이 때문에 망하기도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대신 돈을 갚아주는 것이다. 물론 이때 채권자가 환호작약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가까운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후자에 가깝다. 대우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받을 돈의 반토막도 제대로 받을지 말지 하는 상황에서도 투신사의 일반 투자자는 기간에 따라 95%까지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투신사와 증권사들은 자본금 범위내에서 혹은 부담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만 손실을 부담하면 된다. 은행 역시 막대한 손실을 보아야 하지만 망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결국 엄청난 부실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환호작약하는 기적(?)의 이면에는 「공적 자금」이라는 환각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환각제는 마약일 뿐이다. 한 번 그 달콤함에 맛들이면 더욱 강한 달콤함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은 파멸할 뿐이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약간의 「금단증상」을 각오하고서라도 달콤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명석한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한국사회에 환생하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애꿎은 친구 대신 국가를 상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신 갚아달라는 닭은 틀림없이 여러 마리였을 것이다. /전성인·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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