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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배로 즐기기] '미니멀음악' 들을땐 마음 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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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배로 즐기기] '미니멀음악' 들을땐 마음 비워라

입력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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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의 「벡사시옹」은 4분음표 13개를 840번 반복하는 음악이다. 악보에는 마딧줄도 없고 박자 표시도 없다. 아무 변화도 없고 그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뿐이다.2월 1일 서울 부암아트홀에서 다섯시간 동안 이 곡이 연주됐을 때 끝까지 남은 청중은 일곱 명. 이 인내심 많은 청중들은 『처음엔 지루했다. 그러나 한참 듣다보니 명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고 말했다. 「진지하고 부담스럽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붙어있는 이 곡은 「괴롭힘」 이란 뜻의 제목에 걸맞게 그렇게 청중을 홀렸다.

사티의 「벡사시옹」은 최소한의 음악 재료를 일정한 패턴에 따라 끝없이 반복하는 미니멀음악의 선구 격이다. 미니멀음악은 미국에서 60년대에 등장했다. 반복은 음악에서 늘 있던 것이지만, 미니멀음악은 노골적인 반복 그 자체에 매달린다. 조성도 없고 멜로디도 없다. 그럼 도대체 뭐가 있다는 말인가.

독일 음악학자 볼프강 부어데는 『미니멀음악은 그 자체 내의 고유한 섬광으로 인간의 의식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시간감각과 공간을 제공하며 서서히 깨어나는 사라진 자아를 통해 잃어버린 고대의 의식과 비밀스런 동경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미니멀음악의 대표적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63)와 필립 글래스(62)의 음악으로 꾸민 음악회가 11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마련한 무대로 필립 글래스의 「현악4중주 5번」 「성난 돌진」, 스티브 라이히의 「드러밍」 「8중주」를 연주한다.

「드러밍」은 타악기만의 반복 리듬, 「성난 돌진」은 피아노 독주곡이다. 「성난 돌진」은 현대무용가 남정호의 춤이 함께 한다. 낯선 음악을 처음 접하는 청중의 괴로움과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조명을 사용한다. 이번 연주의 지휘를 맡은 정치용은 고민에 빠졌다. 지휘자가 할 일이라곤 반복의 숫자를 세어 연주자가 헷갈리지 않게 도와주는 것 정도여서 무엇을 할지 난감하다.

이런 음악을 누가 좋아할까 싶지만 천만에, 미니멀음악은 20세기 현대음악의 70년대 히트상품이다. 한국에서는 완전히 낯선 음악이지만 말이다. 미니멀음악을 즐기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뭔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며 귀를 쫑긋 세우거나 긴장하지 말고. (080)337-533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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