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본산 전경련이 갈 지(之)자 행보를 하고 있다. 김우중회장의 후임을 뽑기위해 2일 전경련회장단이 모였으나 인선에 실패하고 내년 2월까지 「회장대행체제」라는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가게됐다. 며칠전까지 수락의사를 보였던 정몽구현대회장이 돌연 태도를 바꿔 대안이 없었다는게 표면상 이유다.예정에 잡혀있던 회장 선출이 이처럼 불발되기는 전경련으로서는 처음있는 일일 뿐 아니라, 모종의 배경이 깔려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번 「사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측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고위당국자들이 잇따라 재벌그룹 오너의 전경련회장직 불가론을 표명한 사실, 정회장의 결심이 하루아침에 돌변한 점등 여러 정황에 비추어 이같은 외압설은 신빙성이 크다. 일부 그룹총수들이 막후에서 정회장을 비토했다는 내부 견제설도 있으나 핵심변수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가 정말 직·간접 압력을 넣었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재벌오너가 재계사령탑을 맡는게 재벌개혁에 도움이 안된다고 본다면 그런 입장과 견해를 조심스럽게 공개하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국가경제의 최종 책임자라는 입장에서 정부당국에도 일정한 권리와 자유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민간경제단체 또는 개인에게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 처사다. 민간자율과 시장경제를 주창해온 장본인이 바로 현정부 아닌가.
입장을 번복한 당사자를 포함한 전경련측도 책임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재계의 명실상부한 지휘탑으로서 독립적 위상을 찾겠다고 외쳐온 전경련이 회장선임이라는 배타적인 역할에까지 정부의 눈치를 살핀다면 너무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다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80년 신군부의 무력적인 강압에도 회장교체를 거부했던 과거와 크게 비교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연말로 다가온 재벌들의 부채비율 200% 감축이행과 관련한 정부측과의 모종 의혹도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재계가 구심점없이 표류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경제에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지금은 재계와 정부측이 팽팽한 견제 균형관계를 이루면서 밀레니엄시대의 국가경제 개조를 위한 비전과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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