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2000년 한국통사를 디지털로 기록하는 대작업이 정부가 아닌 한 기업인의 열정에 의해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주인공은 전자출판업체인 서울시스템의 이웅근(67)회장. 이회장은 97년 조선시대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CD롬으로 완간, 화제가 됐던 인물. 이 회장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민족문화연구위원회에서 우리말로 고친 조선왕조실록을 수년간의 작업끝에 CD롬으로 펴냈으며 이어 고종과 철종시대도 자체번역을 거쳐 CD롬으로 완성했다. 이들 실록은 지난달부터 유니텔을 통해 인터넷(silok.unitel.co.kr)에도 공개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나머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도 각각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토대로 디지털자료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중이며 내년께 인터넷에 공개할 계획이다. 삼국사기는 이미 CD롬 작업이 끝나 이달말부터 판매할 예정이며 고려사는 부산 동아대와 공동으로 작업을 벌여 현재 95% 정도 진행했다.
이회장이 우리의 귀중한 역사자료를 새롭게 디지털로 기록, 보관하기 위해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은 수백억원이 넘는다. 개인 재산은 물론 어렵게 키운 회사의 지분까지 아낌없이 투여했다. 정부에서도 엄두를 못낸 일을 수익보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을 만들겠다는 욕심에 기꺼이 시작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애써 CD롬으로 만든 조선왕조실록이 나오자마자 불법복제품이 쏟아지고 IMF가 겹치면서 그는 지난해 부도의 시련을 당했다. 어려움에 처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오히려 외국인들이었다. 『이것은 혁명』이라는 표현까지 쓴 영국 옥스퍼드대 동양학연구소의 제임스 루이스교수를 비롯해 외국기업등의 도움으로 올해초 500만달러의 외자를 들여와 빚을 청산했다. 올해말까지 2,000만달러가 추가로 도입되면 자금운영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서울대 경제학박사 1호인 그가 우리 역사에 매달린 것은 85년 전자출판업체인 서울시스템을 설립하면서부터. 어려운 한문과 매일 10페이지씩 읽어도 40년이 걸리는 방대한 분량때문에 일반인에게 넘지못할 산이었던 조선왕조실록을 국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욕심에 손을 댔다.
20년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우리 경제를 좌우한 장관과 부총리를 수두룩하게 길러낸 열정으로 직접 한문원전을 들여다보며 꼼꼼하게 제품을 만들었다.
요즘 이회장은 현대사까지 손을 대고 있다. 「창작과비평」 1호부터 100호까지 수록한 CD롬에 이어 자료의 희귀성때문에 전권을 다 보기 힘든 「사상계」전권을 어렵사리 CD롬으로 만들어 곧 출시할 계획이다. 더러 돈 안되는 사업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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