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대피로가 어디있냐고요? 글쎄요…』 『가끔 비상벨이 울리지만 오작동으로 밝혀지는게 대부분입니다』하루 수만의 인파가 왕래하는 대형 유통점등 다중이용시설 관계자들은 2일 안전관리시설 실태를 묻는 본보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한국판 「타워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실태 최근 청소년들이 즐겨찾는 서울 동대문의 M의류상가. 불야성을 이루는 상가건물은 내부가 좁고 미로와도 같아 비상구를 찾기까지 한참을 헤매야 한다. 어렵게 찾은 비상구는 두사람 정도밖에 빠져나갈 수 없다.
비상구를 빠져나가도 통로 곳곳에 겹겹이 쌓인 짐들을 뛰어넘어 경사진 계단으로 대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화전은 상품진열대로 가려져 있어 무용지물이 돼 있었고 소화전의 위치를 아는 상인들도 거의 없었다.
소화기는 대부분 점검일 조차 적혀있지 않아 작동이 가능한지 불확실했다. 비상통로를 가득 메운 옷꾸러미 옆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3명이 담배를 피우다 무신경하게 담배꽁초를 집어던지는 모습도 목격됐다.
같은 시간 신촌의 한 극장. 올라갈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하지만 영화를 관람한 뒤에는 뒷문을 통해 좁다란 통로를 내려가야 한다. 건물구석의 비상구는 잠겨있었다.
공짜 영화구경을 하려는 「얌체족」들이 있어 문을 잠가놓을 수밖에 없다는게 극장측의 해명. 화재가 발생한다면 관객들은 꼼짝없이 불타는 난로속에 던져지는 셈이다.
대형건물들의 화재시스템도 허술하기 짝이없다. 대기업의 사옥이 있는 서울 여의도 한 고층빌딩의 관계자는 『매월 한번꼴로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고 있지만 화재경보가 울리면 오히려 오작동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아 상당시간 꺼두고 있다』고 전했다.
허술한 소방법 규제완화에 따라 8월부터 매년 1회씩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돼 있는 시설주나 관리원에 대한 소방교육은 전면 폐지됐고 소방시설 검사 횟수도 호텔·백화점 등 1급 방화관리대상 대형건물은 매년 2회에서 1회로, 노래방과 카페·단란주점 등 2급 방화관리 대상건물은 매년 1회에서 2년에 1회로 줄어들었다. 검사도 시설주가 민간업체에 의뢰해 자율적으로 실시한 뒤 보고만 하게 돼있다.
방재회사인 OCSE-GBI의 정성(鄭成·44)대표는 『화재관련 법규가 피상적이고 체계성도 없다』며 『지난 수십년간 소방법도 거의 개정되지 않아 첨단화재장비의 경우 오히려 형식승인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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