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6월7일 명동성당 사도회관에서는 제13회 환경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세계환경의 날을 기념해 열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행사였다.당시만 해도 권력층은 환경운동마저 체제전복운동쯤으로 생각하고 탄압했었다. 이때문에 행사를 주최한 당시 한국공해문제연구소의 최열씨가 행사를 앞두고 가택연금됐고 2부 순서에서 반공해운동의 전개방향에 대해 강의하기로 한 백기완선생도 연금됐다.
나는 영산호보존회장으로서 83년 영산강 주정공장 추방운동의 성공사례를 발표하기로 돼있었는데 연락을 받은지 며칠 안돼 목포경찰서 정보과 형사 2명이 찾아와 행사에 참여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지않겠다고 안심시킨 뒤 당시로는 검문이 심하지않은 비행기로 상경, 명동성당에 도착했고 삼엄한 검문속에서도 「촌사람」이어서인지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참석자 60여명이 반갑게 맞았다.
국내 최초의 환경의 날 기념행사치고는 너무 검소하고 단촐해 놀랐다. 플래카드도 하얀 종이에 솜씨없는 글씨로 누군가가 써서 붙여놓았고 노래 악보도 등사판으로 만든 것이었다. 비용으로 따지면 1만원도 들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참석자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행사가 끝나고 같이 저녁을 들면서 훌륭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더니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성당 입구의 허름한 곰탕집이었다.
10여명이 저녁을 함께 했는데 그 자리에는 작고한 연세대 성내운교수도 있었고 요즘 국민회의에서 활약하는 임채정의원도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의견을 묻지도 않고 수육 두접시, 소주 두병, 곰탕 열그릇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성내운교수는 『서선생은 의사이기 때문에 점잖은 줄 알았는데 순 싸움꾼이네요』라고 농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자 당시 공해문제연구소에 근무하던 정문화씨가 호주머니에서 1만원 정도 들어있는 꼬깃꼬깃한 봉투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날 그들이 보여주었던 소박하고 열정적인 모습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나의 삶과 환경운동에 힘이 되어 주었다. /서한태·의사 ·푸른전남21협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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