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 불법의 불길속에 쓰러진 아이들 - 김준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 불법의 불길속에 쓰러진 아이들 - 김준호

입력
1999.11.03 00:00
0 0

씨랜드 참사의 악몽이 채 가시기 전에 인천에서 또 다시 대형 화재가 일어났다. 이번 사고로 50여명의 청소년들이 불길 속에서 죽어갔다. 때마침 축제가 끝나 많은 청소년들이 호프집, 노래방, 당구장에서 뒤풀이를 하다가 부모의 가슴에 한을 심고 먼저 간 것이다.대형사고가 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사건 역시 가시적으로 책임이 가장 큰 업주는 호된 처벌을 받을 것이고, 단속을 소홀히 한 관계 공무원은 적당히 처벌하는 선에서 끝이 날 것이다. 대형사고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국민들은 며칠 안가 사건 자체를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난리를 치고 금세 잊어버리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번 참사는 왜 대형화재가 났는가와 왜 희생자의 대부분이 청소년인가라는 두가지 의문점에서 짚어봐야 한다.

먼저 대형화재는 법과 현실의 괴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주인이 지어달라는 대로 엉터리로 건물을 지어 준 건축업자, 유해 인화물질로 내부를 장식하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유리창을 막고 화재가 나자 돈을 못받을까봐 출입구를 막았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업소주인, 그리고 단속을 소홀히 한 관계 기관 등 이번 화재는 하나같이 현행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거나 지키는데 소홀히 했다가 일어난 총체적인 범법행위의 결과물이다. 어른들이 이처럼 법을 지키지 않고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희생된 청소년이 출입이 금지된 장소에 간 변을 당했다고서 법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이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 이들에게 출입을 허용한 업소주인과 이를 단속을 하지 않는 경찰 등 관계자 역시 모두 어른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법 등 관련 법규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 왜 단속을 하지 않았는가?

언제부터인가 법따로 현실 따로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우리 사회의 관행이 끝내는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일단 그곳에 간 청소년들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을 비판하기에는 우리가 가꿔온 사회의 모습이 너무도 누추하다. 우선 우리는 학생들에게 법은 지켜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현실과 사회에서 접하는 현실이 다른 것을 당연시하도록 사회를 만들어왔다. 결국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일탈을 당연시하고, 일탈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일탈로 생기는 뒷감당은 어른이 져주는 것으로 성장했기 십상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왜 금지된 장소에 갔는가를 생각해봐도 어른들은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벌 위주의 사회는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없는 청소년들을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소외된 청소년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기만의 미래상을 그려볼, 가슴을 펼 공간을 어른들은 충분히 마련해주지 않았다. 이번에 화재가 난 호프집은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유해업소로 청소년에게 출입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학벌위주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이 그나마 마음놓고 숨을 쉴 수 있는 해방구가 바로 유해업소이니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한가.

업소 주인과 관계 공무원만 처벌한다고, 일시적인 유해업소 단속으로는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관계 법률을 개정하거나 더 나아가 새 법을 만든다고 해결된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의 자식들은 유해업소로 내 몬 우리 부모, 돈에 눈이 어두워 자식에게 술을 판 부모, 그것을 보고도 단속을 하지않은 부모들인 우리 어른들이 근본적으로 반성을 해야 한다. 내가 업소주인이 아니고 관계 공무원이 아니라고 책임이 없지 않다. 우리 모두 내 자식을 죽였다고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법의 집행과 청소년보호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김준호 고려대교수 사회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