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현(33)씨의 첫 소설집 「청동거울을 보여주마」(창작과비평사 발행)의 인상은 강렬하다. 종교와 주술을 다룬, 요즘은 드문 소설들의 내용이 그러하고 그 내용을 풀어가는 작가의 진지한 문장도 그렇다. 작품집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치열한 소설쓰기의 흔적을 보여준다.작품들의 내용은 대부분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경계에 서 있다. 불교화가나 무속인같이 오늘날에는 잊혀져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원초적 인간성을 상실한 현재의 상황을 환기시킨다. 무녀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 피를 싫어해 멕시코로 도피했다가 그곳 원시부족에서 삶의 시원을 찾고 주술의 신비를 경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쓴 표제작, 6.25전쟁 기간 중 바닷가 마을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언니의 인신(人身)을 희생하고 대신 그 아들을 키워온 무당의 이야기(「기청제」)는 무속을 다룬다. 「꽃으로 짓다」 「내영(來迎)」 「인멸(湮滅)」은 불교화가들의 이야기다. 이 세 작품은 모두 불교화가 집단의 막내인 「석이」의 시점에서 탱화를 그리는 노사(老師)의 치열한 장인정신을 통해 예술의 세계를 보여주고, 80년대의 상흔을 주술적 분위기로 다루기도 한다.
민씨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것은 어떤 미적(美的) 절대의 세계, 신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인간의 근원적인 넋을 찾아보려는 추구이다. 그는 이에 걸맞게 고풍스런 묘사 위주의 문체를 선택한다. 「불의 기운이 양으로 몰린 것이 태양이라면, 음으로 뭉친 것이 인간이 피워낸 불씨이니 이것이 세간의 문명을 만든 힘이다. 불이란 다스리는 자의 마음을 좇나니 문명의 불과 지옥의 불이 모두 한뿌리에서 피어올라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인멸」중). 민씨는 홍익대 독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97년 시와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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