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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칼럼] "여보, 나 자기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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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칼럼] "여보, 나 자기 많이 사랑해"

입력
1999.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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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근무시간 중에, 나와 같은 청사에 출퇴근하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함께 청사 뒷길을 걷지 않겠느냐고 사정하는 것이다. 마지못해 승낙하고 발길을 재촉하는데 뒤가 켕겨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주저주저하는 나를 아내가 자꾸 더 멀리 걷자고 잡아 끄는 풍경이 영 낯설게 보였으리라.청사의 단풍은 보기 좋게 물들었는데 닫힌 남편의 입과 걸음에 아내는 한껏 불만이었다.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모른다』며 자책하고 내 눈을 애써 피하면서 하릴없이 발끝에 채여 구르는 돌멩이에만 자꾸 시선을 주는 아내가 안쓰러워 내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도 분위기를 망쳐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안 했다.

그날, 가을 하늘 아래에서 각자 다른 이유로 가슴 두근거렸던 산책은 그렇게 끝장나고 그 부작용은 두고두고 이어졌다. 일요일을 기회삼아 청평의 강변으로 모셨는데도 화는 평정되지 못했고 당번제를 어긴 점 등, 평소 일상 생활에서 쌓여 온 서운함에 불이 옮겨 붙어 폭발하는 사태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갖게 된 점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내가 사적인 영역에서의 세심한 감정 표현에는 미숙한 것은 틀림없다. 사회적 공분을 모으고 표현하는 일에 혈기 발랄한 청춘의 많은 부분을 보냈으므로 나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개발하고 상대와 공유하고 그것으로 같이 어우러지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젬병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위안하려 해도 가슴 한 구석의 허전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 현실에 충실하면 어떨까. 가족관계도 구성원 각자의 노력으로 가꾸어야 할 삶의 한 마당임에 틀림없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 참여하고 함께 교감을 나누는 기술 개발에도 인색하거나 쑥스러워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우리에게 공사분별의 판단기준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아내의 그런 감정을 소중히 받아 주지 못하겠는가.

깊어 가는 올 가을에는 하늘을 쳐다보며 가슴을 활짝 펴보자. 그리고 80년대 내내 억눌렀던 가슴 속 감정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무엇이 두려우랴. 나도 때론 틀에 갇혀버린 듯한 내 자신을 거역하고서 하루빨리 절름발이 정서를 회복하고 싶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내에게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진하게 전해 주고 싶다. 『여보, 나 자기 생각 많이 해』 /배정회·과학기술부 기반기술개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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