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이번 사건의 실체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을까. 정형근(鄭亨根)의원이 문건을 폭로한 25일부터 제보자의 정체가 밝혀진 28일까지 나흘간의 동선을 짚어보면, 이총재는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가 찾아온 28일 오후에야 뒤늦게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우선 이총재는 제보자의 신분을 모른 채 정의원의 폭로를 승인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부에선 이기자가 문제의 문건을 사전에 이총재에게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총재는 27일 국민회의가 문건제보자로 「중앙일보 간부」를 지목하자 중앙일보측에 『정말로 문건제보와 관계가 없느냐』고 물었다는 전언이다.
이총재는 28일 오후 이기자로부터 문건제공 사실과 함께 『정의원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고백」을 듣고는 부랴부랴 정의원을 찾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자리에서 정의원은 『500만원씩 두번 돈을 준 적은 있으나 문건과는 별개』라며 몇몇 여야의원들도 이기자를 도와주었다고 「해명」했다. 정의원은 그러면서 『이기자가 이총재를 직접 찾아온 것으로 미루어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에게 역으로 엮인 게 틀림없다』며 『여권이 손을 쓰기전에 선공(先攻)을 해야한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제보자의 신분을 공개한 28일의 심야 기자회견은 이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총재의 처신과 판단미스에 대한 당내 비판도 적지 않다. 『사안의 성격상 총재가 처음부터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었다』 『총재의 말처럼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이라면 처음부터 전모를 파악한 상태에서 자기 책임하에 일을 벌여야 했다』는 등의 지적이다.
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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